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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곤지곤지 잼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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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곤지곤지 잼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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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 벡이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는 로버트 카파라는 사진작가를 추모하며 그가 찍은 사진에 담긴 한 아이의 얼굴을 보며 민중 전체의 공포를 읽을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로버트 카파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총 대신 카메라를 겨눴던 인물입니다. 무려 22년 동안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살며 삶의 의미를 찾았으며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지뢰를 밟고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사진작가들은 한 순간을 포착하기위해 오감을 집중시킵니다. 그리고 수없이 셔터를 누르며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열정을 쏟아냅니다.
때문에 사진작가들의 전시회를 볼 때면 그 작품 속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느껴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같은 사진작가는 “나는 평생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길 바랐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진 한 장에 그 현장과 느낌을 모두 담아낸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진에 관한한 저는 문외한입니다. 찍고 싶은 피사체를 앞에 두고 구도만 잘 맞추어 셔터를 누르면 되는 것인 줄 생각했습니다. 셔터를 몇 번 누르면 됐지, 왜 저렇게 수없이 반복하면서 찰칵찰칵 소리를 내느냐는 무식한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괜찮지만 아날로그시대에는 소비되는 필름이 아까웠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몇 사진전을 갈 기회에 작품을 감상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담느냐,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철학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사진 한 장에서 배우는 통찰의 기술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최근 금융인이면서 사진작가이기도 한 윤현수(한국상호저축은행 회장)씨와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동안 보여준 사진에 대한 열정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시테크를 하는 그의 모습과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사진공부에 대한 열정(대학원 사진학과 재학)에서 그의 진면목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공한 금융인입니다. 여러 개의 상호저축은행을 경영하고 있는 그는 금융업에서 잔뼈가 굵었고 평생을 그 마당에서 인정받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사업에 성공했으니 새로운 취미 하나 더 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번째 사진전을 개최할 때는 많은 부(富)를 축적했으니 자신이 찍은 사진을 기록에 남긴다는 차원에서 돈 많이 들여 전시회까지 갖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첫 전시회에 그가 출품한 작품은 파리, 런던 등 세계 각지에서 거리의 모습을 관찰하며 느낀 감정을 카메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재빠르게 먼저 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사진을 통해 욕망이나 욕심을 잠재우고 싶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여행 중이던 어느 날 새벽 4시반 런던에 도착했을 때 공항을 빠져나와 맨 처음 본 풍경이 횡단보도에 붉은 신호등 하나가 깜빡이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를 보며 “인생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이며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살기로 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진에 몰두하게 된 사연을 들으며 그때 저는 그저 성공한 CEO가 이젠 생활에 여유를 찾는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그와 대화를 하면서 그동안 저의 짧은 생각에 대해 후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지금 금융인이 아닌 새로운 영역에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이제 금융인이기보다는 사진작가로서 평가받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사진작가의 세계’-그 이상입니다. 사진을 통해 순간을 포착하며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투영해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는 세 번의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가진 작품전을 포함하면 네 번의 전시회를 연 셈입니다. 며칠 전 만남에서 요즘 무슨 작품을 구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의 대답은 ‘곤지곤지 잼잼’이었습니다. 빛과 어둠의 세계를 찍더니, 싸움소의 세계를 쫓아다니더니 이제는 ‘곤지곤지 잼잼’이라는 좀 익살스러운 사진세계를 구상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곤지곤지 잼잼’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 인간의 존엄성, 자연의 섭리를 작품에 담기로 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단동십훈(檀童十訓)을 뒤적이며 ‘곤지곤지 잼잼’의 뿌리를 찾아 봤습니다. 단동십훈의 정확한 출처와 지은이는 알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게 나왔는지도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단군시대부터 내려오는 왕족들의 자녀양육법인 것 같습니다. 지암, 곤지 등 고승들의 호를 따서 만든 얘기라는 설도 있습니다.
어릴 적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곤지곤지 잼잼’에 대한 연습을 많이 한 경험이 있습니다.
곤지곤지는 한자어로 坤地坤地입니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왼쪽 손바닥을 찧는 동작입니다. 아기의 지능발달과 심폐기능을 도와준다는 얘기가 있지만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땅을 의미하는 손바닥을 콕콕 찌르면서 천지간의 조화를 알도록 일깨워 준다는 것이죠.
땅은 인간이 살아가는 터전이고 우리의 생명이 있게 하는 원천이기도 하니 그 속에 천지의 조화를 의미하는 심오한 진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두 손을 앞으로 내놓고 다섯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잼잼이라고 하지요. 지암지암(持闇持闇)의 준말로 쓰게 된 것으로 입니다.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쥘 줄 알았으면 놓을 줄도 알라는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쥘 줄 알았으면 놓고, 또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인간완성의 첫걸음을 시작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윤현수 회장. 그는 이미 금융기관의 회장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사진작가입니다. 사진 한 장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꿰뚫어 보는 통찰의 미학에 심취해 있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총 대신 카메라를 겨눴던 로버트 카파 못지않게 초단위 속도로 변하는 치열한 경영현장에서 또 다른 도전을 통해 의미있는 삶이 뭔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을 지켜보면서 상자 안에서만 지지고 볶는 단조로운 일과를 내팽개치고 상자 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컴퓨터를 끄고 휴대폰도 꺼라.”
“손자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엔진으로 부(富)와 명예를 함께 얻은 에릭 슈미트 회장이 한 이런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컴퓨터와 휴대폰을 끄고, 상자 밖의 세상에서 ‘곤지곤지 잼잼’ 동작을 반복하던 때로 돌아가 스스로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 가져보면 어떨까요?
“나에게 사진은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라 말하는 윤현수 회장처럼 상자 밖을 통해 상자 안의 자신을 들여다보는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이코노믹리뷰 회장 president@asia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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