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어버이라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가슴 미어지는 팽목항의 어버이날

▲팽목항을 찾은 한 추모객이 국화꽃을 놓고 갔다.

[진도(전남)=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유제훈 기자] #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통화라도 많이 할 걸. 넌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엄마가 숨이 끊어져도 넌 내 가슴 속에서 영원히 함께할 거야. 살아서 널 기다려서 미안해. 혼자 먼저 보내서 미안해"(진도 팽목항, 故 김동협 군 어머니)# "저희가 무슨 자격으로, 뭘 잘했다고 카네이션을 받을 수 있겠어요. 아마 전국에 있는 부모들 마음은 매 한가지일 거에요"(안산 합동분향소, 참배객 한모씨)# "'카네이션을 달지 않겠습니다"(7일 오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구지회 회원들이 침묵시위를 벌이면서 내건 팻말)세월호 참사로 300명이 넘는 학생ㆍ시민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가운데 맞은 올해의 어버이날, 많은 어버이들은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차마 카네이션을 달 수 없었다. 예년처럼 아이들로부터 감사를 받는 대신 부모, 어른으로 사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던, '슬픈 어버이날'이었다. 8일 오전 팽목항 부둣가에는 자식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애끓는 마음을 써 내려간 부모의 편지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생전에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엄마, 마지막 인사라도 하게 해 줘 고맙다는 아빠의 글귀가 아이들에게 가 닿을 것처럼 진도 앞바다를 향해 펄럭이고 있다. 사고 첫 날부터 이 곳 팽목항에서 자녀의 귀환을 기다린 부모들의 편지는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이 나라에 낳아줘서 정말 미안해', '아빠가 항상 미안해. 힘이 없어. 계란말이 해줄게 빨리 와', '아빠가 미안타. 기다릴게. 꼭 한번 보자 꾸나'라는 글귀에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어미 아비의 비통함이 묻어났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안산 합동분향소. 매년 이맘때면 빨간 카네이션을 준비했을 어린 학생들의 영정사진 앞에는 순백색의 국화꽃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곳에선 '잘 길러줘서 고맙습니다'는 아이들의 말 대신 어른들의 '미안하다'는 말이 연신 흘러나왔다. 특히 숨진 단원고 학생 또래의 자녀를 뒀을 법한 중년 여성들이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참배를 위해 과천에서 왔다는 40대 여성은 "지금 대안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 아들이 제주도에 가 있어서 그런지 더 슬프고 눈물이 난다"면서 "내일이 어버이날인데 무슨 자격으로, 뭘 잘했다고 카네이션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슬픔에 잠긴 안산시내에서는 좀처럼 카네이션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몇몇 가게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카네이션을 내놨지만, 이를 사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녀 셋을 두고 있다는 택시기사 장인태(56)씨는 "(아이들을) 못 구한 게 아니라 안 구한거다. 카네이션이고 뭐고 왜 아이들이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게 했는지 그게 제일 미안하다"라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인터넷, SNS에서도 어버이날에 빨간 카네이션 대신 노란 리본이나 다른 상징물을 달자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인천시민 차현숙(52ㆍ여)씨도 "우리 아이가 저렇게 됐다면 어떨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잘못된 것은 100%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라면서 "이번 어버이날엔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 (희생자들을) 추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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