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인들은 방 안에 홀로 있다가도 천둥이 치고 벼락이 내리치면 옷깃을 여미고 삼가 낯빛을 가지런히 했으니 그들은 무엇을 삼가고 무엇을 두려워한 것인가? 뇌성에 놀란 게 아니라 스스로를 살핀 것이며, 벽력에 심약함을 보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한 것이다. 하늘이 소리 내어 우는 소리에 자신의 몸을 살폈으며, 하늘이 몸을 비틀어 진동하매 스스로를 돌아본 것이다. 그 같은 근신과 성심이 작게는 수신(修身)이며, 크게는 치국(治國)이었다. 하늘이 산과 강을 통해 벌을 내리고 추궁함을 알았기에 치산(治山)이 곧 치국이요, 치수(治水)가 곧 치국이었다. 그렇기에 순 임금은 "산림과 나무와 풀과 새와 짐승들도 모두 나의 백성"이라고 했던 것이니, 산천초목을 잘 다스리고 온갖 조수(鳥獸)를 잘 다스림에 치국이 있으며 백성의 안녕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결국 치산이 곧 치인이요, 치수가 곧 치인이며, 치산과 치수가 곧 민본이요 위민(爲民)이었던 것이다. 치자(治者)가 백성을 편하게 해 주지 못하면 산과 강이 백성에게 화를 입히는 법이니, 하늘은 그렇게 미욱한 치자를 징치하고 깨치게 했다. 그렇기에 비를 내려 주길 간청하는 기우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이었으나 결국 하늘 위의 하늘, 백성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세종이 성군이 된 것은 그 본래의 어진 성품과 총명함과 함께 즉위 초 7년 대한(大旱)의 시련이 또한 있었기 때문이니, '하늘이 누군가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할 때는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한다'고 했듯 저 명석한 임금에게 큰 가뭄을 내림으로써 스스로 삼가고 두려움을 갖도록 했기 때문이다. 우 임금이 손수 흙과 돌을 날라 홍수를 막은 지 수천 년, 그러나 강물이 넘쳐 나고 둑이 터지니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으며 죄 없는 이들이 집을 잃는다. 제방은 견고해지고 저수지는 넓어졌는데 이는 무엇 때문인가. 스스로 근신하고 삼가는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하늘의 노여움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정치가 이에 미치지 못함을 먼저 걱정해야' 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늘을 놀라게 하고 귀신을 울리게 한 우 임금의 정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 삼가는 마음, 성심의 정성이 그 어느 방죽보다 견고한 방수(防水)임을, 그 어떤 성대한 기우제보다 지극한 기우제임을 알지 못해서가 아닌가. 모든 천재(天災)는 결국 인재(人災)임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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