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순기자
정재훈사진기자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br />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원래는 국제 심판을 해보고 싶었다. 선수로 활동할 때 올림픽 출전이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가정형편이 많이 안 좋아졌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는 신문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조달해야했다. 운동을 계속할지 고민하다가 상무에 입대했고 삼일방직이라는 실업팀에서도 2년 정도 뛰었다. 당시 코치를 병행하며 모은 1000만원을 들고 유학길에 올랐다. 주변에서는 유학 갔다 오면 지도자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만류했지만 프랑스로 갈 때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대학(청주대)에서도 불문과를 전공했다. 특별히 불어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궁금하다.펜싱 용어가 전부 불어로 돼 있었다. 기왕이면 알고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때부터 독학으로 공부했다. 생각보다 실력이 늘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대학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당시 몇몇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 청주대는 당시 불문과가 없었는데 내가 진학했을 때 처음 학과가 생겼다. 펜싱은 어차피 해야 되는 일이었고 불문과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입학을 결심했다. 프랑스 유학생활은 어땠나. 지도자 과정이 3단계로 나뉘는데 1단계는 우리의 생활체육 지도자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1단계에서는 1대1 지도와 팀을 가르치는 법을 배우고 정확한 펜싱 용어도 공부한다. 과정을 마치면 필기와 논술, 레슨, 규칙에 대한 구술시험 등을 본다. 필기는 조금 점수가 낮았지만, 나머지는 만점을 받아 수석으로 졸업했다. 엄청난 노력의 결실이었던 거 같다.1년 동안 정말 고생하며 회화 공부를 했다. 현지에서도 다들 놀랐다. 외국인은 탈락할까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1단계를 마치면 1년간 클럽에서 지도자 경험을 쌓은 뒤 2단계 시험에 도전할 수 있다. 대표팀을 지도하려면 최소 2단계 자격이 필요하다. 다행히 수석졸업 자격으로 바로 시험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체육학을 이수해야만 완전한 자격증을 딸 수 있는데 여건이 안 돼 펜싱 부문 자격증만 받았다. 좀 더 공부해서 다음 단계를 밟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과 현지 체류 문제로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br />
올림픽을 앞두고 불미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매뉴얼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데.다른 종목은 모르지만 우리는 특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코치 대부분이 국제대회 경험을 갖추고 있어 오심에 대한 대처방안은 인식하고 있었다. 세계대회는 규칙을 철저하게 적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면 올림픽은 인지도가 있어 규정이 엄격하다는 것을 선수들에게 충분히 주지시킨다. 선수들에게 소리도 못 지르기 때문에 때로는 수신호로 조치하기도 한다. 우리도 그런데 심판들은 더 주의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오심 논란 이후 대한체육회와 불편한 감정은 없나.솔직히 박용성 회장의 인터뷰를 전해 듣고 적잖게 섭섭했다. 나름대로 절차에 맞게 대응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몇 번 기회가 있어 FIE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그쪽에서 오해하지 않고 내용을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독일 대표팀 선수 중 한 명은 훈련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안 되겠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위안삼고 있다. 공부하는 지도자상이다. 선수로서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보상 심리인가.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해 후배들을 보면 늘 아쉬운 부분이 있다. 나도 선수 시절에는 열심히 하는 척만 했던 것 같다. 그런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운이 좋아서 메달을 딸 수도 있다. 하지만 큰 대회에서 그런 요행은 통하지 않는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보완할 점과 개선할 점을 많이 배웠다. 그동안 너무 느슨하게 흘러오지 않았나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였다. 조금 더 냉정했다면 에페 단체전 금메달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남는다.[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br />
김흥순 기자 sport@정재훈 사진기자 roz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