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나의 캐디편지] '레이더에 자부심을 가지라고요?'

하얗고 둥글게 생긴 커다란 레이더가 있습니다.바로 우리 골프장 입구에 우뚝 솟아 있어 대다수 고객들은 고속도로에서 이 레이더가 보이기 시작하면 골프장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코스 안에서는 레이더를 보고 샷의 공략 방향을 알려드리는 홀도 종종 있지요. 고객들은 그러나 보통 '물탱크'라고 하십니다.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인코스 첫 홀에서 홀을 설명하고 있는데 고객께서 "저기 큰 골프공 보고 치면 되나?"라고 물으십니다. "물탱크가 아닌 골프공이라고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봤던 골프공이 이거였구만"이라는 그 고객께서는 "골프장에서 이렇게 큰 공을 만드느라 힘이 들었겠다"고 걱정까지 합니다. "그게 아니라, 저건" 제가 말하기도 전에 "저 골프공이 있어서 사람들이 여기 골프장이 있는 줄 아는 거야"라고 덧붙이는 고객은 아무래도 그 레이더가 골프공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고객께서는 한 술 더 뜹니다. 홀을 지날 때마다 계속 레이더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단 말야! 어떻게 저렇게 큰 골프공을 만들어놨지?"라며 이번엔 아예 비거리까지 묻습니다.공항 옆인 우리 골프장에 비행기를 맞히겠다는 분들은 여러 번 봤지만 레이더를 맞히겠다는 분은 또 처음입니다. 고객께서는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다시 질문합니다. "언니, 진짜 궁금한 게 있어" "뭔데요?" "저 골프공 어느 회사에서 만든 거야? 타이틀리스트야? 아니면 캘러웨이야?" 제가 참다못해 "골프공이 아니라 레이더"라고 말하자 고객께서는 제가 잘 모른다며 끝까지 골프공이라고 우깁니다. "언니는 자부심을 가져야 해.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큰 골프공이 있는 골프장은 여기 딱 한 군데야" 어이가 없습니다. 제가 우리 골프장에 여러 가지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레이더까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단 말입니까? 하지만 18홀 내내 골프공이니 아니니 실랑이 하던 고객께 제가 세뇌를 당했나 봅니다. 갑자기 레이더가 골프공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손은정 기자 ejso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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