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의 축구세상] 특유의 스타일이 낳은 'K리그 명승부'

지난 6월 18일은 K리그 역대 하루 최다 골 기록이 갈아치워 진 날이다. 8경기에서 모두 29골이 터져 나왔다. 단지 골만 많이 터진 것에 그치지 않고 전체의 절반인 4경기에서 한 골 차로 승패가 갈렸으니 내용상으로도 짜릿한 경기가 많았다. 그 가운데에서 전북과 제주가 벌인 전주성 혈전은 올 시즌 지금까지의 대표적 명승부였음에 틀림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경기가 5월 15일의 명승부 포항-전북 전에 비해서도 조금 더 나았다는 생각이다.전북과 제주의 경기는 무엇보다 두 팀의 스타일과 전술의 측면에서부터 매우 흥미롭다. 전북은 최강희 감독의 ‘닥치고 공격’이 표방하는 바대로 지속적인 전진 지향적 축구를 펼치는 팀이다. 전북의 그러한 스타일에는 앞 선을 구축하는 공격 자원들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계속해서 두드리면 결국에는 우리가 이긴다”는 자신감이 짙게 배어나온다.실제로 에닝요, 루이스, 이승현과 같은 선수들이 상대 진영을 오래도록 헤집어놓다 보면 이는 필경 이동국의 마무리(혹은 적어도 획득한 세트플레이에 의한 골)로 연결이 되곤 한다. 그것으로 안 될 경우에는 로브렉, 김동찬, 정성훈 등 또 다른 공격수들이 대거 그라운드에 들어선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초읽기까지 몰린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국면을 흔들어 상대의 대마를 잡는 일에 능한 전북이라 하겠다.반면 제주는 적어도 ‘닥치고 공격’의 스타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한 번을 공격해도 확률 높게 공격하고자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제주의 최대 강점인 간격과 대형의 유지다. 제주는 상대의 볼 위치에 따라 전체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위치를 재조정하며 간격과 대형을 유지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이렇게 간격과 대형을 갖춘 상태에서 볼을 빼앗게 되면 역습에 나설 적에도 유리함을 지니게 된다. 패스 줄 곳을 찾기가 그만큼 쉬워지는 까닭이다. 또한 제주의 선수들은 가장 효율적인 공간으로 침투하는 동료를 향해 언제나 빠른 타이밍의 패스를 공급할 준비가 되어있다.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볼을 그리 오래 끄는 법이 없다. 구자철의 창조성과 네코의 마술 없이도 올 시즌 제주가 여전히 만만치 않은 이유다.6월 18일의 경기에서 전북과 제주는 서로의 이러한 특성들을 유감없이 펼쳐보였고 이것이야말로 이 날의 명승부를 낳은 원동력이 되었다.초반부터 볼을 점유하며 공세적으로 나섰던 쪽은 역시 전북이었다. 그러나 제주의 조직적 압박과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대형은 전북 선수들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될 만한 공간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이는 속공보다는 지공에 좀 더 가까운 전북의 스타일이 제주의 수준급 조직력에 잘 먹혀들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대조적으로 제주가 볼을 끊어냈을 때 전북은 제주의 빠르면서도 세밀한 역습에 매우 고생해야 했다. 65분 산토스(유명세는 다소 덜 할지 모르지만 매우 뛰어난 선수다)가 두 번째 골을 뽑아내며 재차 리드를 잡은 제주는 80분이 다 되도록 박경훈 감독의 모토인 ‘10초 압박, 10초 점유, 7초 내 역습’을 그라운드 위에서 실로 멋들어지게 구현해내고 있었다.그러나 전북의 흔들기가 마침내 빛을 발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제주 선수들의 체력은 떨어지고 있었고 견고하던 대형도 조금씩 느슨해졌다. 80분경 중앙 수비수 한 명을 더 투입하면서 5백처럼 물러선 것도 결과적으로 제주에겐 그리 좋지 않았다.상대적으로 전북의 신념과 화력은 점점 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교체 투입된 로브렉이 왼쪽 측면의 박원재와 예리한 콤비 플레이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며, 역시 교체 투입된 정성훈 또한 루이스의 극적인 결승골 장면에서 한 몫을 했다. 89분에 이르러 전북은 결국 드라마틱한 역전에 성공한다.물론 이 경기의 ‘옥에 티’는 주심의 다소간 뒤늦은 판정 하나가 제주의 억울함을 불러일으켰던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 하나를 제외하고 이 경기는 완벽한 명승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이러한 명승부가 연출된 바탕에는 두 팀이 일관적으로 추구해온 특유의 스타일과 전술이 있었다. ‘전북하면 떠오르는 스타일’, ‘제주하면 떠오르는 스타일’을 각각 성공리에 정착시키고 있는 두 클럽에 박수를 보내며,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K리그 클럽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 준 희 (KBS 축구해설위원 / 아주대 겸임교수)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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