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라임라이트]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17초
뉴스듣기 글자크기

오스카 '뒤집어 놓은' 봉준호 감독, 실패에서 배운 인생철학

[라임라이트]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이미지출처=연합뉴스]
AD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봉준호(51) 감독의 첫 작품은 20분짜리 애니메이션 '룩킹 포 파라다이스'다. 영화동아리 '노란문'에서 활동하며 만들었다. 주인공은 고릴라 인형. 봉 감독은 아르바이트해서 산 히다치 캠코더로 고릴라 인형을 일일이 움직여가며 '미속도 촬영(1회에 1프레임씩 촬영하는 기법)'했다. 그런데 작업 후 애니메이터의 꿈을 접었다. 그는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쓴 '데뷔의 순간(2014)'에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힘들게 사흘 동안 촬영했는데 돌리면 10초밖에 안 나오니까. 정말 허무하고 고통스러웠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감독 혼자서 다 하는 게 아니더라. 촬영을 종료하던 날, 고릴라를 내던지며 '야, 한 번이라도 네가 좀 알아서 움직여봐!'라고 소리쳤다.“


[라임라이트]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오스카) 4관왕을 이룬 주역에게도 고난의 세월은 있었다. 봉 감독은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1995년 사실상 실업자가 됐다. 충무로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지만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그는 장선우 감독의 '꽃잎(1996)' 연출부 면접에서 떨어졌다.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스태프 모집에는 연줄이 없어 지원조차 못했다. 봉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동기로 '지리멸렬(1994)'의 조명을 맡기도 했던 임재홍이 '꽃잎' 연출부에 붙어서 나로선 상심이 더 컸다"고 회고했다.


그는 영화아카데미 선배 박종원 감독이 준비하던 '김대중 죽이기' 연출부로 들어가 시놉시스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김대중 죽이기'는 우여곡절 끝에 제작되지 않았다. 봉 감독은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1996)' 연출부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한국영화 역사상 최고의 '망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여기 참여한 김유진ㆍ장현수ㆍ정지영ㆍ박철수ㆍ박종원ㆍ장길수ㆍ강우석 감독 모두 자신들의 필모그래피에 포함시키길 꺼리는 옴니버스 영화다. 봉 감독은 당시를 또렷이 기억한다.


"백수로 지낸 기간이 채 1년이 되지 않은 1995년 12월 겨울, 처음으로 현장에서 슬레이트를 치는 감격의 순간이 왔다. 하지만 영화가 영화인 만큼 연출부였음에도 현장에 가기가 싫었다. 말하자면 처음으로 충무로 스태프가 되었는데, 그런 영화를 한다는 게 못내 부끄러웠던 거다. 나중에 개봉했을 때도 극장에서 안 보고 비디오로 봤을 정도다.“


[라임라이트]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봉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동기 장준환 감독과 함께 박기용 감독의 '모텔 선인장(1997)'에서 퍼스트 조감독으로 일했다. 당시 박기용 감독은 '탈 충무로'라는 기치 아래 미국 인디영화처럼 독자적으로 프로듀싱하고 연출하는 시스템을 꿈꾸었다. 친구인 차승재가 제작을 맡으면서 봉 감독은 우노필름(현 싸이더스)과 연을 맺게 됐다. 봉 감독은 이곳에서 5년간 몸담으며 '유령(1999)' 각본을 쓰고 '플란다스의 개(2000)'로 메가폰까지 잡았다. 첫 촬영은 송파구 문정동에서 현남(배두나)이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비가 왔다. 돌이켜보면 '백색인(1993)'을 찍던 첫 날도 비가 왔다. 내 첫 단편과 장편 모두 촬영 첫 날 비가 온 것이다. '백색인'의 경우 무려 20여명의 스태프가 봉천동 아파트 단지에서 촬영을 준비하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지하 주차장에서 하루 종일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보다가 철수했던 기억이 난다. 수많은 스태프와 함께 했던 내 생애 첫 촬영이 그렇게 끝나버리자, 어쩌면 이것이 내 불길한 영화 인생의 서막인가 싶어 상당히 우울했었다.“


[라임라이트]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플란다스의 개'는 쫄딱 망했다. 서울에서 관객 5만7469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평단의 반응도 썰렁했다. 봉 감독은 "사실 그때 충격이 좀 컸다"며 "나름 착실히 단계를 밟으며 준비하고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실의에 빠져 있을 무렵, 친구 류승완 감독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로 소위 대박을 쳤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의 타란티노 등장', '한국 독립영화의 혁명' 등등 찬사를 받았다. 그해 연말에 청룡영화제 신인 감독상 등 많은 상도 챙겼다. 봉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와 대조적인 결과를 보며 우울증에 빠졌다"고 털어놓았다.


"아마도 그때가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던 시기였을 것이다. 연출부를 거치지 않고 데뷔할 수 있는 이런저런 제안들을 다 거절하면서까지 이 길을 묵묵히 걸어왔는데, '완전히 잘못된 선택을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심경이 무척 복잡했다. 도제가 점점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에서 승완이처럼 인디펜던트 게릴라식으로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하는 건 아닌지, 혹은 한 번의 실패로 좌절한 나머지 충무로 시스템에 대해 너무 환멸을 느끼는 건 아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했다.“


[라임라이트]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깊어가는 고민은 '살인의 추억(2003)'을 연출하기로 결심한 뒤에야 털어낼 수 있었다. 쓸데없이 고민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오직 작품에만 쏟자고 결심했다.


봉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졸업 이후 '플란다스의 개'를 촬영하기까지 4년 2개월이 걸렸다. 데뷔작을 만들기까지 10년 넘게 걸리는 이가 부지기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나름 순탄한 길이었다. 그러나 분투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길고 힘들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는 "사실 내게 포기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다른 감독들처럼 직장을 다니다 때려치우고 영화계로 뛰어든 것도 아니고,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이후 다른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오직 영화 하나뿐이었다.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뒤 그냥 직진만 해왔다."


[라임라이트]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봉 감독이 '한눈팔지 말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하자'는 생각으로 이뤄낸 결실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특히 '기생충'의 경우 비영어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았다.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에서 자막의 장벽과 보수적 전통을 동시에 뛰어넘었다. 봉 감독은 "어떤 순간에도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을 의심하지 말고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든 좌절감이 수시로 엄습하겠지만, 이미 발을 내딛은 이상 그저 묵묵히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오직 그것만이 답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