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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아슬아슬한 외줄 위에 선 '최고의 의료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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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아슬아슬한 외줄 위에 선 '최고의 의료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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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참으로 효율적인 구조'


한국의 의료 체계 전반을 꿰뚫는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의 의료 구조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이는 칭찬은 아니다. 최소한의 인력만을 투입하고, 최대한 쥐어짜 운영되는 구조라는 반어법에 가깝다. 안전 마진이라고는 없이 딱딱 맞는 투입과 산출만이 이뤄진다. 업무 미숙을 이유로 극한의 압박이 가해지는 간호사 '태움' 문화와 수술을 할 수 없는 간호사가 직접 메스를 잡는 '진료보조인력(PA)' 등의 기형적 구조 역시 이로 인한 산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구조의 기반에는 암묵적 동의도 존재한다. 조제된 약을 받을 때는 약사에게 복약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약국을 찾는 환자 대부분은 빨리 약을 받아 가는 게 우선이지 약 먹는 법을 모두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식후 30분'이라는 기준이 왜 필요한지도 모른 채 그저 아침 약, 점심 약, 저녁 약만 구분해 복용한다.


저자 자신도 약사인 동시에 가족들이 의사(동생), 간호사(어머니), 병원 직원(아버지)이라는 환경 덕에 각종 의료 직역의 현실을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는 저자는 이 같은 구조의 취약성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효율적으로' 환자를 다닥다닥 붙여 수용했던 6인실은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도 효율적으로 만들며 '코호트 격리'라는 파국을 야기했다. '따끔합니다'라는 말만 할 뿐 백신의 이상 반응 가능성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 접종은 백신에 대한 불신을 불러왔다. 반면 평소에도 복약지도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했던 환자들은 의료계의 우려에도 빠르게 비대면 진료를 받아들였다.


변화는 더 빨라질 것이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수가와 약가에 대해 엄밀히 들여다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절박함의 발로다. 매년 10조원이 넘는 돈을 정부가 지원해 건강보험 재정이 가까스로 버티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의 의료 정책은 젊은 인구에 기대어 가까스로 평형이 맞춰진 상태"다. 지속 불가능한 기반 위에 세워진 만큼 지금의 고령화 추세가 지속되는 한 언젠가 평형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란 뜻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돈'과 '인력'의 관점에 집중해 대책을 제시한다. 근본적으로 수가 제도를 개편해 기피되는 과에 실제로 인력이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공간적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응급 의료 문제부터 해결해나가는 방안 등을 언급한다.


한국의 의료체계를 언급할 때 늘 말해지는 것 중 하나가 최고의 국민건강보험 체계를 갖췄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기형적일 정도로 효율적인 구조를 통해 젊은 노동 연령층의 보험료로 이뤄져 온 업적이다. 그 구조는 영속될 수 없다.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기 위해서는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만 하는 이유다.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 박한슬 | 북트리거 | 184쪽 | 1만4500원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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