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국방·의료 지출 확대 압박
사상 최고 수준 도달한 공공부채
금융시장으로 재정 부담 분산해야
사람들은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데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국가의 개입 확대와 증세를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저축을 투자로 유도하는 강제적인 제도를 마련해야 할 수도 있다.
이는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선제적으로 또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대응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다. 후자가 초래할 충격과 혼란을 고려하면 전자가 훨씬 바람직한 선택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반드시 사회주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재정적 수요를 충족하려면 보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점진적 변화, 혹은 다른 위기가 발생할 경우 생겨날 혁명적 변화는 왜 필수적인가. 이는 시장경제 국가들이 직면한 사회·경제·안보 수요가 기존 체제가 감당할 수 있는 대응 능력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 동맹국들에 조금 완곡한 표현으로 이른바 '국방비'라 불리는 군사비 지출을 대폭 증액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다른 공공서비스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일부 국가는 상당한 부담을 느끼면서도 이러한 요구를 따르고 있다.
다른 한편 세계은행은 '2030년까지 15억명에게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기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기여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회원국들에 보건 지출을 늘릴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2025년 글로벌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46억명은 필수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으며, 21억명은 의료비로 인해 경제난을 겪고 있다.
세계은행은 "이런 도전 과제들은 각국이 보다 회복력 있고 공정한 보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 장기적이고 잘 조율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보건과 국방 분야에서 정부가 감당해야 할 재정 수요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고령화로 급증하는 국가연금 재정 압박이나 2050년까지 약 200조달러로 추산되는 기후변화 및 재난 대응 비용에 비하면 미미하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수조달러에 이르는 정부 차입 증가로 공공부채 수준에 대한 시장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IIF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첫 3분기 동안 글로벌 부채는 26조달러 이상 늘어나며 총 규모가 약 346조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에서 부채가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 보고서는 "글로벌 부채 증가가 정부 부문에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과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순으로 증가 폭이 컸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재정 적자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일본과 중국, 독일, 미국에서 내년부터 재정 부양 효과가 본격화되면 각국 정부가 앞으로도 부채와 이자 부담을 계속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갈수록 부채에 짓눌리고 있는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차입을 더 늘릴 것인가? 채권 시장이 이를 용인하지 않는 한 이는 쉽지 않다. 세금을 인상할 것인가? 세계 경제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일자리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앙은행이 압박을 받아 화폐를 더 찍어낼 수도 있겠으나 이는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경제·사회적 재정 부담을 보다 공정하게 나누기 위해 금융시장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많지 않다. 이를 전 세계적으로, 즉 지리적·제도적 차원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간 기여의 비중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도 높은 대대적 개혁이 필요하다.
현 상황은 이례적이다. 사람들은 세금을 납부하면서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질 것을 기대한다. 적어도 일부 사회에서는 국민이 만족하지 못할 경우 정부를 교체할 수 있는 제재 수단도 존재한다.
그러나 민간 부문에서 자산운용사나 펀드 매니저가 연기금이나 보험료를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이 같은 대중적 통제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비롯한 시장경제 국가에서는 거대한 자산관리 산업이 형성돼 왔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 운용되고 있는 금융자산 전체 규모는 98조달러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했다.
자산운용업은 개인이 직접 투자한 자금이든, 연기금·뮤추얼펀드·생명보험사와 같은 기관을 통해 모인 자금이든 간에 주식과 채권 시장을 통해 다양한 포트폴리오 금융자산으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 중 대부분은 전 세계 78개 증시에 상장된 5만3000여개 기업의 주식에 투자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상당 부분은 월가와 소수의 주요 증시로 집중된다. 기술주와 AI와 관련된 종목 등 소수의 초대형 기업은 이 같은 자금 유입의 핵심 수혜처가 되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거시적 차원의 재정 부담 일부를 납세자에서 투자자(대개 동일한 주체이기도 하다)로 이전하려는 전환은 분명 쉽지 않은 과제다. 이는 금융의 기본 구조의 변화도 요구한다. 그렇더라도 이 같은 전환은 우리 자신을 파산 상태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선택이다.
앤서니 로울리 아시아지역 경제·금융전문 기자
이 글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칼럼 From climate change to health, global problems need investors to step up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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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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