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복무가 끝나도 30대 중반인데, 결국 대부분은 수도권으로 넘어갈 거예요." 경기도 소재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의사제와 관련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남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향에 있는 의대를 졸업하고 부속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인근에서 일하다가 30대 중반에 지금 소속된 병원으로 올라왔다.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의료수요가 크게 줄어 소득·양육 등의 문제에 봉착하자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제가 대학에 갈 때 지역의사제가 있었더라도 저의 인생 경로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의사제를 통해 만 19세에 의대에 입학하는 경우 6년의 과정을 거쳐 25세에 의사가 된다. 의무복무를 마쳐도 34세에 불과하다. 이제 막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계획할 가능성이 높은 때인데, 여기에서 시작될 길고 긴 미래의 설계가 '지역'을 기반으로 이뤄지리라고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의사제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결국 10년간의 의무복무 기간 이후가 더 중요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지역에 환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 즉 수요의 소멸이다. 서울역과 수서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형 상급종합병원의 셔틀버스들은 이미 붕괴할 만큼 붕괴한 지역의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료산업도 수요와 공급, 이를 바탕으로 하는 미래 수익성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10년의 의무복무 기간 중 수련의(인턴)·전공의(레지던트)·전임의(펠로우)의 단계를 거치면 어엿한 의사로 지역에서 복무하는 실제 기간은 2~3년에 그칠 수 있다는 점도 제도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지역의사제가 실효를 거두려면 이 제도만으로는 풀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거점 지역에 한해서라도 의료 수요가 유출되지 않도록 현지 의료 이용에 따른 이점을 의료소비자들에게 더욱 파격적으로 제공하고 이를 체감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의료만으로도 당신의 건강을 충분히 지킬 수 있다'는 구호만 가지고선 아무 것도 바로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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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역 필수의료와 관련해선 수가 및 병원의 경영논리, 사법 리스크가 의사들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더욱 전향적이고 적극적으로 제도 손질에 나서는 일이 시급하다. 지역의사제는 지역의료,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 의료의 체계에 결부된 하나의 작은 퍼즐에 불과하다. 지역의료가 문제이니 지역의사제를 시행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식의 단선적 접근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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