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정보 유출" 출자 회수 추진
실현땐 운용 자산 축소…기업가치 영향
흥국생명 "불공정 경쟁" 법적 대응 예고
창업주 가족의 무리한 매각 추진이 발단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에서 각종 잡음이 불거지면서 매각 자체가 불투명해질 위기에 처했다. 주요 인수 후보였던 흥국생명은 불공정한 입찰 경쟁이었다며 법적대응을 예고했고, 핵심 출자자인 국민연금도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다며 투자금 회수도 추진하겠다고 통보했다.
국민연금 출자 회수 땐 기업가치 근간 흔들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전날 투자위원회를 열고 이지스자산운용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미 이지스자산운용 경영진을 불러 통보까지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이 이지스자산운용에 맡긴 자금은 약 2조원으로 시장평가액 규모는 7조~8조원에 달한다.
이지스자산운용이 매각 과정에서 국민연금 위탁자산 관련 정보를 원매자에게 무단 제공한 점이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출자자의 사전 동의 없이 본입찰에 참여한 한화생명, 흥국생명,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 등에 관련 펀드 보고서가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 추진 초기에도 이지스자산운용은 국민연금에 별다른 보고 또는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힐하우스 같은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후보로 갑작스레 등장한 소식도 국민연금에 사전 보고 없이 뒤늦게 전해졌다는 후문이다.
2010년 설립된 이지스자산운용이 국민연금의 공적 자금을 기반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만큼, 국민연금이 투자금을 회수하면 기업가치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운용자산(AUM)이 축소되고, 주요 출자자와 마찰이 생기면서 평판까지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공제회나 연기금 등 출자자들도 비슷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상당하다. 결국 입찰 가격부터 재협상을 하거나 거래 자체가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입찰절차 불공정 "…흥국생명도 강력 대응 예고
흥국생명도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매각 주관사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매각 주체인 손화자씨 등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준비 중이다. 우선 입찰 절차의 불공정성과 비밀유지 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협상 금지 가처분을 내고, 인용되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해 민·형사 고소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9일 흥국생명은 입장문을 내고 이번 우협 선정이 매각주관사(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와 중국계 PEF 간 합작품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11일 본입찰에서 흥국생명은 1조500억원을 제시했지만, 힐하우스는 인수가를 9000억원 중반대에서 1조1000억원가량으로 높여 부르면서 흥국생명을 따돌렸기 때문이다. 이번 거래가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으로 진행돼 사실상 2차 입찰처럼 추가로 가격을 올릴 수 있었다.
흥국생명 측은 애초에 주주대표와 매각주관사가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음에도 반칙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흥국생명 측은 "매각주관사는 본입찰 이후 우협 선정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더니 힐하우스에 프로그레시브 딜을 제안하며 인수 희망 가격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며 "이 과정에서 흥국생명이 입찰한 금액이 유출됐을 가능성도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매각주관사는 지난달 11일 본입찰을 진행했지만, 약 한 달 뒤인 지난 8일에서야 우선협상대상자로 힐하우스를 선정했다. 업계에서는 매각 주관사가 세 후보에게 인수가 상향 조정을 유도하지 않았다면 한 달이나 걸릴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힐하우스 측은 우협 선정 이후 입장문을 냈지만 프로그레시브 딜 전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모든 절차에 매각주관사의 기준과 규정을 철저히 준수했다"며 "단기적인 수익보다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중시하는 투자자로서 장기적 관점에서 이지스자산운용이 성장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창업주 가족의 무리한 매각 추진 발단
창업주인 고(故) 김대영씨의 배우자인 손화자씨와 장녀 김애미 투썸플레이스 사외이사가 매각 가격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이같은 잡음이 불거진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이사는 2001년부터 올해 초까지 글로벌 컨설팅펌 맥킨지앤컴퍼니에서 근무했다. 한국 여성 최초로 맥킨지 파트너에도 오른 바 있다. 해외 투자은행(IB), PEF 인맥이 강한 김 이사가 1년여 전 직접 골드만삭스와 접촉하면서부터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이 본격 추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힐하우스도 김 이사가 직접 후보로 데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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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잡음이 불거진 이상 매각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힐하우스가 이지스자산운용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힐하우스가 출자 능력이나 자본건전성 등과 같은 정량적 심사 항목은 충분히 통과하겠지만, '중국계 자본'이라는 딱지와 국민연금 이탈 등 잡음이 금융시장 안정성과 공익적 고려 등과 같은 정성적 항목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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