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 베트남 유학생 후옌
국경 넘어선 가족의 정의
8000㎞ 떨어진 고향 부모는 오지 못했지만, 졸업식장에는 '두 번째 부모님'이 있었다.
대구대학교 통번역학과를 졸업한 베트남 유학생 팜 티 탐 후옌(Pham Thi Tam Huyan·24)의 곁에는 지난 4년간 그를 친딸처럼 돌봐온 지역 음식점 사장 부부가 함께였다.
◆"아르바이트가 준 뜻밖의 선물"
후옌의 한국 생활은 매일 저녁 5시, 경산 진량읍의 한 식당에서 시작됐다.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선택한 아르바이트였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인생의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처음엔 언어도 서툴고,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해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사장님 부부가 늘 곁에 있어 주셨죠" 후옌은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식당은 대구대학교 교수들도 단골로 찾을 만큼 지역에서 입소문 난 곳이다. 바쁜 저녁마다 후옌은 손님들을 맞으며 한국 사회에 적응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사장 부부는 '고용주'가 아닌 '부모'로 자리 잡았다.
◆"우리에게는 친딸 같은 존재"
사장 이 모 씨(53)는 "언어가 서툴러 처음엔 걱정했지만 성실함과 책임감이 남달랐다"며 "힘든 일도 꿋꿋하게 해내는 모습이 꼭 딸 같았다"고 말했다. 아내 역시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면서도 후옌의 생일마다 케이크를 준비하고, 명절에는 집으로 불러서 함께 음식을 나눴다.
"아프면 약을 챙겨주고, 베트남 음식이 그립다고 하면 재료를 구해 같이 만들었어요. 후옌이는 제게 정말 '딸'이었어요 ."사장 부인의 말에는 모성애가 묻어났다.
사장은 운동을 좋아하는 후옌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며 '아버지와 딸' 같은 시간을 만들기도 했다. 후옌이 실수로 울음을 터뜨릴 때면 "괜찮다, 누구나 처음엔 다 그런 거야"라며 다독였다.
졸업식에 함께한 눈물졸업식 날,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 중인 사장 부인은 일부러 휴가를 내고 행사장에 나섰다. "우리 딸 같은 아이의 중요한 순간을 놓칠 수 없었어요." 그 말 한마디에 후옌은 결국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대구대학교 관계자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지역사회가 가족처럼 돌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진정한 다문화 공동체의 모범"이라고 평가했다.
"이제는 한국이 제2의 고향"후옌은 졸업 후 통·번역 전공을 살려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가교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4년 전 낯설기만 했던 이곳에서 이제는 제2의 고향을 얻었어요. 사장님 부부 같은 분들을 만나 정말 행복합니다."
고향 부모 대신, 또 다른 부모가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가장 큰 박수를 보냈다. 혈연을 넘어선 사랑이 한 유학생의 꿈을 키워냈고, 이제 그 꿈은 현실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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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학생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다문화 사회의 본질을 본다. '가족'은 혈연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낯선 땅에서 진심으로 보듬어준 관심과 사랑은 오히려 혈연을 넘어선 유대감을 만들었다. 이 작은 지역 식당의 따뜻한 품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다문화 공동체로 성숙해 가는 길을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현장이 아닐까.
영남취재본부 권병건 기자 gb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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