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명의 도용해 대출 받기도
교제할 때부터 결혼 이후까지 자기 이름, 직업 등을 모두 속인 배우자와의 혼인을 취소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7일 대구가정법원 경주지원은 A씨(36)가 남편 B씨(51)를 상대로 제기한 혼인 취소 소송에서 "원·피고 사이의 혼인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A씨와 B씨는 모바일 게임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당시 B씨는 A씨에게 "(나는) 국군 특수부대 정보사 출신으로 얼굴을 노출할 수 없고, 본인 명의의 통장도 개설할 수 없다"며 "모든 게 기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혼 후 A씨가 B씨의 신상에 관해 확인해 보니, 혼인신고·출생신고를 한 B씨의 이름, 나이, 초혼여부, 자녀유무, 가족관계, 군대이력 등 모든 게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B씨는 A씨의 명의를 도용해 A씨 이름으로 대출을 받기도 했다.
또 임신 중이었던 A씨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씨는 B씨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B씨는 잠적했으나, 지명수배자가 된 후 구속돼 교도소에 수감됐다.
A씨는 사기에 의한 혼인취소,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권을 단독으로 받기 위해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A씨를 대리해 B씨를 상대로 혼인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공단 측은 B씨가 교제 초기에 적극적으로 A씨를 속이지 않았다면, A씨는 애초 B씨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로 혼인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B씨의 폭력성,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 등을 고려하면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도 A씨를 단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B씨는 법정 진술에서 "자녀는 본인의 자식이 아닌 A씨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이라고 주장했으나, 유전자 감정 결과 B씨의 친자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공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A씨와 B씨의 혼인을 취소한다며 판결했고,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도 A씨를 단독 지정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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