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출생률 2.3명…"40년내 인구 감소"
백약이 무효…GDP 5% 쏟아도 줄었다
"출산은 선호도의 문제"
전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하락하면서 각국이 천문학적 금액을 지원하고 있으나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목받던 국가들도 다시 아기 울음소리가 잦아드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는 2023년 합계출산율을 2.3명으로 추정했다. 머지않아 2.2명 이하로 떨어지면 현재 수준의 인구 유지가 불가능해지고 감소가 시작되는 것이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로, 인구학에선 현재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선 전 세계적으로 2.2명, 선진국에선 2.1명은 돼야 한다고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만 놓고 보면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1.5명이다. 대다수 선진국은 이미 1970년대에 2.1명 아래로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40년 이내에 세계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헤수스 페르난데스-빌라베르데 펜실베이니아대 인구통계학 전문 경제학자는 "인구통계학적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2050년 EU 인구 10% 감소…개도국도 골머리
유엔(UN)에 따르면 유럽 인구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감소세로 전환해 2050년께 지금보다 4000만명 가까이 줄어들 전망이다. 올해 1월 기준 유럽연합(EU) 인구는 약 4억4920만명이었는데, 인구의 10%가 감소한다는 뜻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다음 달 5일(현지 시간)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핵심 의제 중 하나는 출생률 하락이다. 선진국 중에선 아이를 많이 낳는 편이라지만 미국 또한 출생률 하락에 직면했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녀 보너스’와 시험관 비용 지원,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6000달러(약 828만원) 자녀 세액 공제 등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이 2021년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해리스 부통령을 향해 "자식 없이 고양이나 키우는 여성들(Childless cat lady)이 국가를 운영하고 있고, 미국을 자신의 인생처럼 비참하게 만들려고 한다"고 공격한 발언이 재조명되며 비판받기도 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1.6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 세계 꼴찌였던 한국(0.72명)보다 매우 높지만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인구 재생산(2.1~2.2명)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최근 들어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도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한때는 ‘한 자녀 정책’으로 출생아 수를 강력하게 제한했던 중국은 2010년대에 정책을 폐기하고도 인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2년 연속 신생아 수가 1000만명을 밑돌고,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은 1.0명으로 추산된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이 된 인도도 작년 기준 2.1명까지 떨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해를 ‘가족의 해’로 선언하고 출산 장려에 나섰다.
전 세계 주목한 헝가리·노르웨이도 꺾였다
저출산 대책 ‘모범 사례’로 꼽혔던 나라들도 다시 출생률이 하락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헝가리다. 헝가리 출생률은 소련 붕괴 후 폭락했고, 2010년 합계출산율이 여성 1인당 1.25까지 떨어졌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가족 정책에 국내총생산(GDP)의 5% 이상을 지출할 만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세 명 이상 자녀를 두면 15만달러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네 명 이상 자녀를 둔 여성은 평생 개인 세금 면제 등 파격적 혜택을 준다. 이에 합계출산율은 2021년 1.6명까지 상승했고, 한국 정치권에서도 헝가리식 해법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반등했던 출생률은 다시 하락세다. 2022~2023년 2년 연속 하락해 작년 1.5명까지 떨어졌다. 올해는 1~8월 기준 출생아 수가 전년 동기 대비 10% 줄었다. 이에 어차피 대가족을 꾸렸을 사람들에게 지원책이 돌아가며 예산이 낭비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헝가리의 출생률 반등이 정부 정책의 효과보다는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빈 인구학연구소는 2010년께 발생한 부채 위기로 헝가리 여성들이 출산을 미뤘다고 밝혔다. 이를 조정하면 통 큰 지원에도 불구하고 실제론 약간만 상승했다는 것이다.
복지국가로 이름 높은 노르웨이도 출생률 올리기에 GDP 3% 이상을 썼지만 문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다. 신생아 부모에게 약 1년에 달하는 전액 유급휴가를 나누어 쓸 수 있게 하고, 여성에게 양육 부담이 쏠리지 않도록 남편도 15주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했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은 2009년 2명에서 꾸준히 감소해 1.4명에 그친다.
케르스티 토페 노르웨이 아동가족부 장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왜 아이를 덜 낳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부모 수당을 인상하고, 위원회를 구성해 출산 감소를 역전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돈 아닌 ‘시간’"…"문화 달라져"
일본은 일찌감치 저출산 문제에 대응해온 국가다. 일본 첫 저출산·남녀공동참여담당 장관을 지낸 이노구치 쿠니코 참의원은 저출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시간이라며 정부와 기업에 주 4일 근무제 채택을 촉구하고 있다. 이노구치 의원은 2005년 임명 당시 가장 큰 장애물을 돈으로 꼽고 산부인과 진료 무료, 아동 수당 등을 도입했지만 일본 출생률은 2015년 1.45명까지 오른 뒤 다시 감소세로 반전됐다.
WSJ는 "많은 자녀를 둔 사람들은 혜택 없이도 자녀를 가질 것이라고 종종 말한다"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혜택이 (출산에) 충분한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문화가 바뀌어서 부모들이 자녀를 갖는 것을 꺼린다고 본다. 과거엔 성인이 되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현재는 자녀를 갖기보다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면서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인구가 많다는 것이다. 또 전 세계적으로 주택 비용이 급증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데 더 긴 시간이 걸리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포린 탄 싱가포르 정책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자녀가 과거엔 노동력과 노후 부양으로 직접적인 경제적 가치를 제공했지만, 현재는 더는 그러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필수재가 아닌 일종의 사치재가 된 셈이다. 탄 연구원은 "아이를 갖는 것은 여가와 경력 발전을 희생해야 하는 순수한 기쁨과 선호도의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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