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면 재료 없어‥실험 중단 고민"‥과학석학도 예산 삭감 불똥

김빛내리 서울대 석좌교수의 '탄식'
허준이 교수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이공계활성화 TF 참석 석학들, R&D 예산 복원 필요성 강조

"(연구의) 내적 동기들을 방해하지 않는 안정된 본질에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어른들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허준이 고등화학원 석학교수)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너무 쉽다. (R&D 예산 삭감이) 우리 과학계에 내상으로 남을 것이 걱정된다. " (김빛내리 서울대학교 석좌 교수)

"쓸데없는 연구, 엉뚱한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최재경 고등과학원장)

한국계 첫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한국인 첫 영국왕립학회 회원인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서울대 석좌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영향권에 있음을 알리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빛내리 IBS 연구단장이 18일 열린 이공계 활성화 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백종민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8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에서 개최한 '이공계 활성화 대책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에서는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 이창윤 과기정통부 1차관 등 고위급 공무원과 학생 연구원들이 참석했다. TF는 이공계 기피 현상 대응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가 공동 운영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이공계 분야 인재 유입을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열렸지만, 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현장의 혼란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석학들은 자신들이 이공계를 선택하게 된 이유, 연구 과정에서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스스로가 겪은 R&D 예산 축소로 인한 어려움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제시했다.

김 단장은 "안정적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과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원을 안 내보내고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인턴 기회를 주고 싶지만 거절 메일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불편하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그는 또 "10월이면 재료비가 다 떨어지는데 무슨 실험부터 중단해야 하나 걱정"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김 단장은 "제 직업을 여전히 좋아하고 이런 재미와 함께 봉사할 기회를 주는 게 감사한 일 같다"면서도 "머리 한쪽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한편에서는 불편하고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김 단장은 "국내 대부분 연구 책임자들의 걱정이다. 비상 상황이다 대책이 필요하다.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 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이어 "전폭적인 장학사업 지원, 우수 유학생 영입을 위한 인프라 구축, 전문연구요원 제도 유지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단장은 특히 주거비를 포함한 장학금 지급이 시급하다며 외국인 유학생 유입을 위한 원스톱 행정 지원 서비스와 인건비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학생들이 주도해 연구하는 '바텀 업' 방식이 '탑 다운' 방식 연구보다 좋은 성과를 내곤 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허준이 교수가 18일 열린 이공계활성화 TF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백종민 기자

허 교수도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연구자나 학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현실적 이유로 선택하지 못하는 진로가 되거나 현실적 이유로만 선택하는 직업이 되지 않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여러 문화권에서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 똑똑한 사람들과 교류할 때 연구자로서 재미를 느낀다고 소개하며 "우수한 학생들이 연구자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지원이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실에 대한 불안과 미래에도 (이공계를) 선택하면서 생기는 잡념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연구의) 내적 동기를 방해하지 않는 환경을 어른들이 잘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최재경 고등과학원장도 소폭이지만 고등과학원도 R&D 예산 축소가 이뤄졌다면서 "쓸데없는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R&D의 효율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상과 다른 연구 결과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을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치의예과를 중퇴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에 재학 중인 김성원 씨는 고등학교 진로 교육 강화, 안정적 연구 환경 조성 필요성을 건의했다. 연세대 시스템공학과에 재학 중인 조보경 씨는 "다양한 연구 분야를 경험하는 기회 제공과 안정적인 연구 활동을 위한 지원이 강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TF 팀장인 이창윤 과기정통부 1차관은 "오늘 건의된 사항은 TF에서 준비하고 있는 대책에 포함하겠다"며 "청년이 과학기술인의 꿈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김 단장의 옆자리에 앉은 박상욱 과기 수석은 별도의 발언 없이 석학과 학생 연구자들의 발언을 경청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