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의과대학' 설립 日 사례 주목
교육 인프라 뒷받침 안되면 의료질↓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과 같은 말이 유행하는 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여덟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의료개혁 의지를 강력히 시사하면서 의대정원 확대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을 일부의 반대나 저항 때문에 후퇴한다면 국가의 본질적인 역할을 저버리는 것과 다름없다"며 정책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의대 신입생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으로 숫자를 확정했고, 예상을 넘어선 숫자에 당황한 의사단체가 집단행동을 예고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설날 온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도 의대정원 확대는 최대 밥상머리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내년부터 전국 의대 신입생 정원을 지금보다 2000명 늘려 19년째 '3058명'으로 묶여있는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이 나오자 의료격차에 시달렸던 지역 주민들은 기대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부는 확대된 정원 2000명을 비수도권 의대에 집중 배정하고, 지역인재전형으로 신입생을 60% 이상 뽑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정부가 기대하는 낙수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성형외과로 표시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는 2022년 1월 1769명으로 10년 전 1003명보다 76.4%나 늘었다. 같은 기간 피부과 의원급 의료기관 의사도 39.6% 증가했다. 의대정원을 대폭 늘린다고 해도 이들이 성형외과·피부과 등 인기 진료과에만 몰린다면 '소아과 오픈런·응급실 뺑뺑이'는 해소될 리 만무하다.
정부는 대안으로 지역필수의사제·지역수가 도입으로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일본의 경우 1972년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치(自治)의과대학'을 설립했는데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지역에서 근무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자치의대' 출신이 65.8%로 가장 높았다. 일본은 의대 졸업 후 지역에서 일할 의향이 있는 학생을 지원하는 '지역정원제'도 병행하면서 지역 의사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야권 의원은 "자치의대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공공의대'와 유사하지만 현 정부는 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의대정원이 늘면 차츰 시간을 두고 (쏠림·의료격차 해소 등)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며 "의대 증원수에 따른 확실한 교육 인프라 구축 계획이 없다면 의료의 질이 떨어져 결국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의료계의 거센 반발을 뚫고 정부가 정책 추진에 동력을 낼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의대정원 확대는 이번이 첫 시도가 아니다. 2020년에도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맞서 집단행동에 돌입하면서 정부의 의대 증원을 무산시켰다. 당시 전공의 80% 이상이 의료현장을 이탈, 의료 공백이 커지면서 정부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는데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할 우려가 크다. 자치의대 설립으로 일부 성과를 본 일본도 지역 의사 부족을 해소하고 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하지 못한 정책은 그만큼 난관도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대정원 확대가 의료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디테일을 깊게 살펴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지혜가 병행돼야 한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