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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아빠를 기다린 건…업무배제 아닌 '승진'[K인구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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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롯데, 남성 육휴 8000여명 사용
출산 뒤 최소 1개월 사용 '의무'
휴직 첫달 통상임금 100% 지급
10년 이상 가족친화제도 드라이브
35개 계열사 '가족 친화인증' 유지
관리자도 자유롭게 육휴 쓰는 '네이버'

편집자주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아빠를 기다린 건…업무배제 아닌 '승진'[K인구전략]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 서비스 개발1팀 리더인 김병관씨가 생후 8개월 된 아들 시윤군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김씨는 "아이가 처음으로 웃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제 정말 새 가족이 우리랑 소통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미래가 더 기대됐다"며 미소 지었다.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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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아빠를 기다린 건…업무배제 아닌 '승진'[K인구전략]

롯데e커머스 재무팀장인 전민석씨(44·남)의 삶은 2019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6개월간 육아휴직을 내고 가족들과 제주살이를 하며 아이들을 오롯이 돌본 경험이 변화의 시작이 됐다. "바닷가에서 행복해하던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 말들이 여전히 잔상으로 남아있어요. 제 삶의 원동력이죠. 아이들 역시 요즘도 '어린 시절 아빠와의 따뜻한 기억'이 담긴 앨범을 함께 들춰보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그는 복귀 후 팀장이 됐다. 근속연수 손해 없이 승진 연한에 맞춰 심사를 받으면서다. 회사에선 더 가열차게 일을 하게 됐지만 그럼에도 일을 핑계로 가정을 배제하는 결정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둘째를 낳고 아내와 '아이들과의 온전한 시간'을 한 번은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던 때가 2017년이었어요. 사회 전반적으로 휴직 이후 커리어에 대한 걱정이 컸던 때거든요. 롯데가 '남성 한 달 의무 육아휴직' 같은 가족친화제도가 잘돼 있다는 얘기에 이직을 결심했죠. 육아휴직 경험 덕에 아이가 커가는 순간순간 같은 중요한 부분을 덜 놓치며 살아가고 있어요."


"네가 가?"가 아니라 "언제 가?"…기업문화 바꾼 남성 육휴

2022년 임직원 출생률 2.05명. 한국 조정 출생률 0.81명, 합계 출산율 0.78명 시대에 롯데그룹 전 계열사 임직원이 만들어낸 결과다. 배경엔 10년 넘게 드라이브를 건 ‘가족친화제도’가 있다. 롯데는 2012년 여성 자동 육아휴직제부터 2017년 남성 한 달 의무 육아휴직제까지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했고 제도의 조기 정착을 위해 자동·의무 등을 붙여 실행으로 이어지게 했다. 전씨가 사용한 남성 육아휴직의 경우 출산 후 2년 안에 시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최소 1개월 이상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해 남성 직원이 가정을 돌보는 데 온전히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경제적 이유로 육아휴직을 꺼리는 직원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휴직 첫달 통상임금의 100%(통상임금과 정부지원금과의 차액을 회사에서 전액 지원)를 보전한다.


처음엔 모두가 반신반의했지만 분위기가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24년 현재 롯데에서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질문은 "네가 가?"가 아니라 "언제 가?"로 변화했다. 팀원끼리 여름휴가 일정을 조율하듯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남성 육아휴직제도 사용률은 90% 이상으로 2022년까지 남성 직원 누적 8000여명이 육아휴직을 다녀왔다. 전씨는 “어차피 한 달은 의무적으로 가는 것이니 여기에 한두 달을 더 붙여쓰기도 하고, 써본 후 필요성을 몸으로 느낀 후 또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전씨와 같은 승진 케이스를 심심찮게 접한 직원들은 육아휴직 후 커리어 훼손에 대한 두려움 역시 크게 줄였다. 그는 "남성 의무 육아휴직 한 달은 그 자체가 주는 의미보다 회사의 전반적인 문화와 분위기를 바꿔놨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말 기준 롯데그룹 35개 계열사가 여성가족부 주관 '가족친화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정승용 롯데지주 인재전략팀 수석은 "롯데는 육아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의무로 인식하고 임직원의 경제적, 정서적 부담을 낮춰줄 수 있도록 기업 주도적으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롯데의 가족친화제도는 이제 그룹을 대표하는 기업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아빠를 기다린 건…업무배제 아닌 '승진'[K인구전략] 롯데e커머스 재무팀장 전민석씨(사진 왼쪽)와 전씨의 가족들이 제주 바닷가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전씨는 2019년 6개월 간 남성 육아휴직을 쓰고 가족들과 찍은 사진으로 만든 앨범은 요즘에도 아이들과의 좋은 이야깃거리라고 말했다[사진=본인 제공].

"임신하면 파티, 복귀엔 진심으로 환영…더 잘하고 싶다 생각하게 해요."

롯데호텔 헤드매니저 김민영씨(34·여)는 육아휴직 후 2021년 12월 복귀했다. 2019년 6월부터 산전휴가 3개월,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2년 등 총 2년6개월을 쓴 후였다. 휴직 전엔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다 복직 시 회사가 의향을 물을 당시 자원해 전략기획팀으로 이동했다. 김 매니저는 복직 후 적응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회사의 분위기였다고 강조했다. "옮기고 싶어 옮기는 거였지만 걱정이 컸어요. 2년이라는 시간을 컴퓨터 앞에도 제대로 앉아 있지 않았던 데다 새로운 업무잖아요. 이때 육아휴직 후 복귀하는 직원을 '웰컴'하는 사내 분위기가 적응에 정말 큰 힘이 됐어요. 휴직을 2년 사용하는 게 이미 자리를 잡아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었다는 점도 부담감을 줄여줬죠. 아이 생겼을 땐 파티를 하며 함께 축하해줬고, 복귀할 즈음엔 전화도 많이 받았어요. 돌아오는 걸 반긴다는 진심이 전해져서 더 잘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만약 '육아휴직을 2년이나 썼네'와 같은 시선이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김씨는 출산 후 2년의 세월에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았다고 강조했다. "덕분에 아이를 두 돌 지나고까지 직접 데리고 있다가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어요. 덕분에 애착 관계가 잘 형성돼 지금도 제가 일하러 나갈 때 아이와 떨어지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아요. 저도 '할 만큼 다했다'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니 복귀 후 일에 집중하기도 좋았고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 황선태 책임(41)과는 출퇴근 시간을 조율해 육아 분담을 하고 있다. 오전 7시~7시30분 남편이 출근하고 김씨는 8시께 아이가 깨면 인사를 나누고 8시15분 집을 나선다. 오전 9시와 오후 4시 아이 유치원 등·하원은 김씨의 어머니가 도와주고 있다. 퇴근 후엔 남편이 6시 퇴근 후 아이를 먼저 보고 있고, 이후 김씨가 합류해 아이를 함께 본다. 김씨는 "남편도 육아휴직을 쓸 계획"이라며 "가장 필요할 때 쓰기 위해 시기를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가장 좋은 점을 뽑자면 이런 (가족 친화적) 제도라고 많이들 얘기합니다. 이게 회사에 대한 로열티로도 이어지더라고요. 아, 열심히 일해서 오래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일을 더 잘하려고 하고요."


롯데의 가족친화제도가 출생률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그룹사별 데이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롯데는 매년 26개 그룹사 대상으로 사별 가족친화제도 운영 편차를 분석하고 개선사항을 논의한다. 각 사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제도를 발굴하는 한편 가족친화 우수사 벤치마킹 등 그룹 차원 컨설팅을 통해 전체적인 제도 고도화 방안을 검토한다. 평가 항목은 총 16개로 난임 지원제도, 출산 경조금, 직장 어린이집 등 자녀의 전 양육 단계를 반영한다. 정 수석은 "2017년 대비 2022년 롯데 임직원 출생률 변화를 살펴보면 급격한 인구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가족친화제도 평가 상위 30% 계열사의 출생률은 오히려 평균 0.07명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는 가족친화제도가 잘 갖춰져 있을수록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 출산 결정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아빠를 기다린 건…업무배제 아닌 '승진'[K인구전략]

관리자도 '남성 육휴' 쓰는 네이버

아시아경제 양성평등 종합점수 1위를 차지한 네이버는 관리자급도 남성 육아휴직을 쓰는 데 부담을 갖지 않는다.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어서 남성이 육아에 참여하는 비율도 높다.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 서비스 개발1팀 리더인 김병관씨(36·남)는 지난해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 1.5개월과 출산휴가, 리프레시 휴가 등을 약 3개월 사용했다.


사내 부부인 김씨는 아내와 함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비슷한 시기에 복직했다. 김씨는 "같은 시기에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부모 모두 빨리 육아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습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네이버가 남성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이 같은 선택이 가능했다. 네이버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2022년 기준 27명으로 전년(21명) 대비 6명 증가했다. 김씨는 "네이버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남성도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이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통해 육아 현실을 몸소 경험한 김씨는 복직 이후에도 각자 시간을 나눠 '공동육아'에 힘을 쓰고 있다. “내가 육아해야 할 시간에는 온전히 혼자서 하려고 한다”며 “나와 아내 모두 업무에 집중해야 할 때 등 최대한 각자의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육아휴직을 통해 김씨는 워킹맘인 아내와 육아로 인한 갈등 상황도 줄일 수 있었다. 김씨는 "아이가 태어난 지 8개월이 됐는데, 처음부터 부부가 모두 오롯이 육아를 경험했기 때문에 한 명에게 맡기고 각자 1박 이상의 외출을 하거나, 평소 좋아하던 일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가정의 일을 해결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회사의 생산성 측면에서도 이득이다.


네이버는 임직원 가족 돌봄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육아휴직은 남녀 직원 동일하게 법적으로 정한 기간(1년) 외에 추가로 1년 더 제공해 최대 2년이며 두 번 나눠 쓸 수 있다. 또 네이버는 서울·경기 지역 6개, 총 951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육아휴직 시에도 사내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다.



네이버는 이 같은 제도를 바탕으로 글로벌 위상도 높이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는 인력 개발, 경제적 성과, 기업 이미지, 조직 내 성평등 문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의 고용주’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아빠를 기다린 건…업무배제 아닌 '승진'[K인구전략]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아빠를 기다린 건…업무배제 아닌 '승진'[K인구전략]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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