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회의' 쏟아지며 '회의 지옥' 얘기까지
"4인 이하 '화상', 10인 이상 '대면'이 효율적"
"회의를 없애 드릴게요."
오랜만에 회사에 출근해 이런 공지 글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캐나다의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인 쇼피파이 직원들은 연말 휴가를 끝내고 올해 1월 초 출근해 이메일 한 통을 받고 깜짝 놀랐다. 토비 루트케 최고경영자(CEO)가 보낸 이메일에는 비효율적인 회의를 대거 없애는 '일정 삭제(calendar purge)' 정책을 펼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직원 1만명이 전원 원격근무 하는 상황에서 2명 이상 모이는 회의를 가급적 없애겠다는 내용이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내용을 들여다보면 수요일을 회의 없는 날로 정했고, 50명 이상이 참석해야 하는 대규모 회의는 매주 목요일에 정해진 시간 내에 잡아야 했다. 직원들의 일정을 관리하는 캘린더에는 3명 이상이 정기적으로 회의하는 것을 막는 장치가 장착됐다. 기준을 지키지 않은 회의 일정에 대해서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회의 한번 잡으려면 일정과 필요성, 참가자 수 등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쇼피파이가 이러한 조치를 취한 건 비효율적인 회의 문화를 뒤바꾸기 위해서였다. 회의 일정이 연이어 쏟아지는 탓에 개인 업무도 못 하고 카메라 앞에 앉아 멍한 표정을 지어야 했던 직원들은 환호했다. 루트케 CEO는 이 조치로 연간 32만2000시간을 아끼게 됐다면서 이는 150명의 직원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시행 한 달 뒤인 지난달 중순 티아 실라스 쇼피파이 최고인사책임자(CHO)는 블룸버그통신과 만나 "일부 회의는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회사의 조치로 누군가가 회의 일정을 잡으려고 할 때 이를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이 모두에게 생겼고, 단순히 모이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회의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 코로나에 다시 주목 받은 '회의 지옥'…대면·화상 콜라보
그룹 회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든 직장인을 괴롭히는 이른바 '회의 지옥'은 회사 안에서 수 십 년 전부터 문제로 자리 잡은 사안이다. 하루 종일 회의에만 불려다니다가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자리에 앉아 겨우 업무를 시작하는 일을 겪는 직장인은 수두룩 하다. 그렇다고 해서 회의를 하면 좋은 성과를 얻나.? 그건 별개 문제다. 한참을 논의하다가 결론도 못내고 헤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불필요한 회의에 기업이나 직장인이 쏟아붓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지난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스티븐 로겔버그 교수가 미국 직장인 6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될 회의에 참석해서 낭비한 비용만 5000명 이상 대기업 기준 연간 1억1000만달러(약13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조사 참가자들이 회의에 쓰는 시간은 주당 18시간이었는데, 이 중 31%는 꼭 필요하지 않은 회의라고 판단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회의 참석을 거부한 경우는 14%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해 계산한 결과였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2017년 대한상공회의소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회의문화 실태'에 따르면 일주일에 평균 3.7회 회의를 진행하는데 이 중 1.7회는 불필요한 회의라고 느낀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이전에 이뤄진 조사지만 현재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회의 문제가 직장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사무실로 출근하지 못하자 상사, 동료와의 대면 회의가 줄어든 대신 화상 회의가 급증했다. 줌, 마이크로소프트(MS) 팀스 등을 활용한 비대면 회의였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거나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복도에서 만나면 간단하게 대화로 끝낼 수 있는 일도 따로 일정을 맞춰 화상 회의 창을 열고 대화를 나누다보니 불필요한 시간 소모도 많아졌다. 이번엔 '화상 회의 지옥'의 시작이었다.
MS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0년 3월과 2022년 2월 사이 MS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팀스를 활용한 주간 회의 시간은 252% 증가했다. 주간 회의 건수도 153% 증가했다. 특히 짧고 갑작스럽게 일정이 잡힌 회의가 2년 새 8% 증가했다. 팀스로 진행되는 회의 중 15분 이내의 짧은 회의가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MS는 15분 이내 짧은 회의가 2021년 2월부터 1년 새 39%나 늘었다며 다른 회의 시간대에 비해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그렇게 코로나19 시기를 3년간 보낸 지금, 우리의 사무실 환경은 달라졌다. 과거에는 잘 이뤄지지 않았던 화상 회의가 속속 자리잡게 됐고, 동시에 대면 회의도 공존한다. 회의 방식이 다양해진 만큼 효율적인 회의 운영에 대한 고민은 한층 깊고 넓어졌다.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회의 참가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참가자의 근무 형태는 어떻게 되는지 등 여러 요소가 회의 방식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됐다.
◆ "4명 이하는 '화상', 10명 이상은 '대면' 회의하세요"
국내 대표 기업 삼성전자도 올해 '회의 줄이기'에 나섰다. 삼성전자의 경계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은 직원들에게 올해 목표 중 하나로 이걸 제시했다. 효율성은 떨어지고 시간만 잡아먹는 회의를 줄였으면 좋겠다는 직원들의 불만을 반영한 조치였다. 전체 회의 중 25%를 감축하고, 나머지 75%도 절반 정도는 가급적 비대면으로 진행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라고 주문했다. 회의를 가급적 줄이되 꼭 해야하는 회의라면 이동하느라 불필요하게 시간을 쓰는 일을 만들지 말라는 요구였다.
회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면 대면 회의와 화상 회의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
코로나19 기간 두 회의 방식을 모두 경험하며 효율성을 실험해본 영국 한 기업의 결론은 '참가자 수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였다. 화상 회의는 카메라와 마이크에 의존해 진행되는 만큼 이에 따른 한계가 있었다. 참석자가 동시에 말하기 어렵고, 작은 화면 속에 비친 상대방의 표정을 살펴야 한다는 점이었다. 회의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돼 결과물을 내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이를 감안했을 때 4인 이하의 소규모 모임에서는 화상 회의가, 10명 이상은 대면 회의가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폴 미젠 노팅엄대 교수 등이 2021년 10월 영국 직장인 21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해보니 2명이 화상 회의를 할 때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회의를 하는 것보다 효율성이 5.9% 올라간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3~4명이 회의에 참석할 경우에도 화상 회의의 효율성이 대면 회의에 비해 5.2%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참석자 수가 5~9명으로 늘어나면서 효율성 증가 폭은 2.4%로 반토막 났다.
회의에 참석한 인원이 적을수록 효율성이 높다고 인식한 이유는 화상 플랫폼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회의 참석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은 절약하면서 참석자 모두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참석자가 10명이 넘어가면 오히려 대면 회의보다 화상 회의가 효율성이 1.4% 줄어든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의 참석자가 10명을 넘기면 화상 회의에서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어렵고, 발언하는 인물을 제외하고는 나머지가 음소거 조치를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 논의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으면 나머지 사람은 관객이 되는 식이다. 또 화상회의 플랫폼 화면에 담을 수 있는 상대방의 얼굴 크기도 작아지면서 표정을 살피기도 어렵다.
◆ 우리도 쇼피파이처럼 '회의 없는 날' 만든다면
회의 없이 하루 종일 개인 업무를 할 수 있는 날을 만드는 기업은 쇼피파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플랫폼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5월 수요일을 회의 없는 날로 지정했다. 당시 그는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회의가 없다면, 더 효율적일 텐데'라고 생각할 것"이라면서 재택근무와 함께 회의 없는 날 도입을 선언했다.
일주일 중 며칠을 회의 없는 날로 지정해야 생산성은 오르면서 직원들의 만족도도 끌어올리는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영국 레딩대 헨리비즈니스스쿨의 벤 레이커 교수 등은 지난해 1월 경영저널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를 통해 1000명 이상의 직원을 보유하고 12개월간 회의 없는 날을 도입한 76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생산성이 가장 높아지는 일수가 주 5일 중 나흘이었다고 밝혔다. 일주일에 5일을 일한다고 봤을 때 단 하루만 회의에 허락했을 때 생산성이 가장 높았다는 의미다.
회의 없는 날이 주 1일일 경우 생산성이 35% 증가했지만, 이 기간이 나흘로 늘어나면 생산성도 74%나 확대됐고, 5일 모두 회의가 없을 경우에는 생산성이 64%로 다소 줄었다. 레이커 교수는 주 4일을 회의 없는 날로 지정한 기업은 메신저에 온 질문에 답변하는 속도가 빠르고, 소통도 더욱 명확해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파악해 '당신이 이렇게 말한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줄었다고 했다.
다만 직원의 업무에 대한 만족감은 회의 없는 날이 주 3일일 때 65%로 최대를 기록한 뒤 주 4일 62%, 주 5일 42%로 급격히 줄었다. 직원이 느끼는 회사에 대한 소속감도 회의 없는 날이 주 1일인 경우 28%였다가 4일로 늘면 44%까지 올라가지만 주 5일로 가면 27%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직원이 느끼는 회의와 관련한 스트레스는 주 5일 모두 회의 없는 날로 지정했을 때 75% 감소하며 가장 큰 폭을 기록했다.
연구를 진행한 레이커 교수는 이러한 실험을 바탕으로 회의 없는 날은 주당 3일이 최적이라고 결론을 냈다. 직원 간에 사회적 연결성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주간 일정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이틀도 적절하다고 의견을 내놨다. 실제 조사 대상의 절반가량인 47%는 일주일에 2일 회의 없는 날을 도입해, 전체 회의 수를 40% 줄였다고 한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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