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서울은 세계적 가장 축복받은 자연환경
파편화된 서울의 녹지 공간을 연결해야
독일은 100년 후 도시계획 미리 세워놔
큰 방향성 결정하고 세부는 수정해가야
서울의 경쟁력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직결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를 가늠하도록 하는 잣대 도시이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계적인 도시로 부상했다면, 이제는 제2의 기적이 필요한 시점을 맞았다. 서울은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자유와 품격이 넘치는 도시로, 시민들이 행복한 도시로 변모해야 한다.
서울은 1000년 고도(古都)다. 고려 시절 남경이었던 서울은 제2 수도로 역할했고, 조선 때에는 한양으로 명실상부한 수도가 됐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성곽에 둘러싸였던 왕조도시 서울은 지난 100여년간 엄청난 변화를 거듭했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을 거치면서 도시의 외연을 크게 확장했고, 그 역할도 다변화했다. 지금은 인구 1000만명의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췄다. 지난해 일본 싱크탱크인 모리기념재단 도시전략연구소는 ‘세계 도시 종합력 순위’에서 서울을 7위로 꼽았다.
특히 지난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으로 1000년간 이어졌던 서울의 권력 축이 용산으로 옮겨졌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서울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 최소 100년을 내다보며 서울의 미래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가깝게는 용산의 재조성, 청와대 활용 등에 대한 논의부터 서울을 어떤 도시로 만들어갈 것인지 긴 호흡의 구상도 필요하다. 아시아경제는 이를 위해 도시·인문학 전문가들과 함께 서울의 미래를 그려본다. [편집자주]
[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서울은 10년이 아니라 1년, 한 달 만에도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다. 이런 서울에 100년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올해 9월과 10월 개최되는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조병수 건축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세계적으로 살펴봐도 가장 축복받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도시의 장점을 극대화한 ‘그린(Green) 서울’의 밑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총감독을 지난해 12월27일 서울 창성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나.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이며 부제는 ‘산길, 물길, 바람길의 도시, 서울의 100년 후를 그리다’이다. 서울은 자연이 굉장히 좋은 도시다. 북악산, 남산, 관악산 등 다양한 산과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한강 등 세계 어디를 봐도 자연이 이렇게 어우러지는 도시를 찾기 어렵다. 옛 서울(한양)을 만든 조선의 건국자들도 자연이 좋아 이곳을 수도로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점을 감안해 구릉과 물길을 최대한 살리는 친환경 도시로 옛 서울을 구상했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의 개발로 전통 도시 구조와 현대 도시 구조는 충돌했고, 자연과 도시가 파편화 되면서 ‘땅의 도시’의 모습이 잊혀졌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앞으로의 100년 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서울이 나가야 하는 방향이 어디인가를 찾는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목표다.
-‘땅의 도시’는 무엇인가.
▲자연친화적인 도시를 말한다. 서울을 다시 자연친화적이며 전원적인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파편화 된 서울의 녹지공간을 연결하자는 제안이다. 예를 들어 북한산부터 청와대와 용산을 지나, 현충원을 거쳐 관악산까지 녹색이 하나의 큰 벨트로 연결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제안들이다. 물론 기능적으로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 유럽의 파리나 런던을 보면 옛날 건물과 주변의 환경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런 것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몇십년 후, 100년 후 우리의 후손들이 살 서울을 자연 속의 전원도시가 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서울은 대단히 축복받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서울이 태생부터 가지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도시의 환경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것이다.
-교통환경 등을 감안하면 서울에 ‘그린 축’을 만들 수 있을까 싶다.
▲100년을 내다 본다고 하면 교통 시스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도심항공교통(UAM)이 활성화된다면 서울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다. 도시의 이동로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또 녹색 축을 만들자고 해서 도로를 아예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한강변에 있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지하화하는 등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녹색 축을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기후위기 등을 감안하면 서울은 자연스럽게 보행자와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미래의 도시는 산의 녹지와 계곡물, 강과 샛강, 그 사이 사이의 습지와 수변 공간 그리고 서울 내 산재해 있는 언덕 등을 자연스럽게 살리면서, 계절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바람길을 적절히 활용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첨단 기술과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활용해 이동, 에너지, 시간의 측면에서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냥 푸르기만 한 ‘그린 도시’가 아니라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면서 편리한 친환경 고밀도시가 돼야 한다.
-한강은 다른 도시에 비해 비교적 넓은 강이다. 그린 축으로 한강도 연결하는 것인가.
▲그것도 충분히 가능한 고려다. 예를 들어 한강에 다리를 놓을 때 폭을 200m에서 2km까지 충분히 넓은 다리를 놓는 것이다. 상부는 완전히 녹지화하고, 하부는 교통 수요를 감당하는 것이다. 다리를 넓게 지어서 양 사이드에 상점 등 편의시설이 들어오는 것도 가능하다.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자는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에도 한강 다리와 관련한 여러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서울의 한강은 세계 도시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 한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면서도 그린 축과도 연결을 시키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강북과 강남의 지역 불균형도 크게 해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비엔날레의 주제가 서울에 일직선의 그린 축을 놓자는 것인가.
▲꼭 직선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 환형으로 다양한 그린 지역을 만들어 그런 그린 환형을 서로 연결하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세계 40개 대학을 초청해 100가지가 넘는 다양한 안이 나올 것이다. 이런 다양한 안을 놓고 자연친화적인 서울의 100년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 보겠다.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는 서울에서 100년의 계획이 가능한가.
▲1995년에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 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함께 카이저슬라우테른 시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시청 공무원이 "앞으로 카이저슬라우테른의 100년 후 모습은 이렇습니다"라며 청사진을 꺼내 놓는 것이었다.
-독일은 이미 그 당시에 100년 후의 도시계획을 이미 세워놓고 있었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래서 놀라는 와중에 현지 공무원이 잠깐만 기다리라면서 다른 많은 지도와 서류를 또 가져왔다. 자세히 보니 지난 100년간 카이저슬라우테른이 어떻게 변화가 됐는지가 2~3년 단위로 표시돼 있었다. 예를 들어 어느 거리의 코너 왜 그렇게 생겼는지, 그 코너가 생길 당시 시청은 100년 후 도시계획의 청사진을 감안해 어떤 방법을 제안했는지 그래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가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었다. 이런 과거의 변화에 기초해 100년을 설계하면 도시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꼭 지금 당장 서울의 100년을 결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큰 방향성을 결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면 왜 그것이 달라졌는지 후손들이 알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서울이 다른 도시와 달리 개성을 갖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용적률과 건폐율, 지구단위 계획이다. 이 제도가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서울의 개성과 조화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 상업지역이면 건폐율 90%, 주거지역이면 건폐율 60%가 정해져 있다. 정해진 법규만 지키면 되니 그 안에서 조화를 해치는 건축이 이뤄지고 있다. 유럽의 도시들은 지구단위 계획이나 법규 이전에 전체적인 도시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른 건축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단위 계획이나 법규에 맞춰야 하는 미국식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현행법에 따르면 새로 짓는 건물은 주차장을 꼭 만들게 돼 있다. 그렇다 보니 오래된 주택가의 경우 주변과 이질적이며 들쑥날쑥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다. 건물이 세워지는 곳의 스카이라인과 주변환경, 주위에 있는 건축물의 형태 등이 모두 다른데 일률적인 규정만 지키면 되니 조화가 흐트러지는 것이다. 건물이 들어서는 부분의 상황과 환경에 맞게 규제가 조금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특혜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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