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
광화문은 역사의 축이 되고
서울의 새 중심은 용산으로
그 전에 '강남 블랙홀' 해소
[아시아경제 황서율 기자] 진희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는 2020년 서울시 행정2부시장으로 퇴임하기까지 32년을 서울시에서 일했다. 서울시 재직 당시 주택건축국장, 도시재생본부장을 역임했으며 뉴타운사업, 주택공급, 도시계획·관리 등 서울이라는 도시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 수립과정을 몸소 체험한 산증인이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권력이 탐한 공간, 청와대·광화문·용산’, ‘블랙홀강남 아파트나라’ 등 서울 도시 공간에 관한 저서를 집필했다. 진 교수는 서울의 미래에 대해서 묻고 싶다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지난 28일 오전 청담동 인근에서 만난 진 교수는 광화문, 용산, 강남 이 세 곳의 미래를 중점적으로 얘기했다. 그는 용산 집무실 이전으로 광화문은 천년 역사의 축이 되고, 그동안 개발이 지지부진했던 용산은 서울의 중심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을 넘어 수도권의 불균형을 일으키고 있는 ‘강남 블랙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광역 인프라를 확충하고 휴전선 이남 지역에 남·북이 경제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진 교수와의 일문일답
-올해 서울이라는 도시에 있었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한 것이다. 이런 변화가 용산과 광화문 일대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보나.
▲용산 집무실 이전으로 광화문은 우리의 지난 천년의 역사들이 용처럼 되살아나 꿈틀거리고, 용산은 지명 그대로 용(龍)이 되는 것이다. 마치 두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면서 새로운 발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용산 집무실 이전에 대해 진영논리를 내세우면서 너무 싸우고만 있어 안타깝다. 도시건축학자나 역사학자들이 용산 집무실 이전을 담론으로 얘기해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는 것을 던져줘야 하는데 지금 그렇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광화문은 어떻게 변모할까
▲광화문은 역사 중심의 축이 강조될 것이다.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을 하면서도 느낀 것이다. 지금은 청와대가 어정쩡하게 개방돼있지만, 청와대가 나오고 북악산이 나오고 백악마루까지 축을 쭉 개방하면 2km 정도 될 것이다. 이를 역사 문화 축으로 가지고 간다면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서울에 오는 모든 국내외 관광객들이 반드시 한번 가보고 싶은 명소가 될 것이다. 천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공간으로 가져간다면 광화문 일대 공간이 훌륭한 공간으로 설계될 수 있을 것 같다.
-집무실이 떠난 청와대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청와대가 예전에는 경복궁 후원으로 쓰인 만큼 시민들에게 완전히 개방됐으면 좋겠다. 다만 본관 같은 경우 대통령 박물관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현재는 각 대통령들 박물관이 떨어져 있는데 1919년 건국부터 시작해서 역대 대통령들이 해왔던 일들을 기록하면 좋을 것 같다. 영빈관의 경우 시민들이나 일반 전문가들이 포럼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나머지 공간들은 몇 개 조그마한 건물들은 휴식공간으로 남기고 보행길을 만들면 될 것 같다. 청와대 뒷산은 몇 개의 철조망만 상징적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정리를 해 전체를 개방한다면 북악산 전면이 개방되는 엄청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천년의 공간에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으로 보고 거기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전체적으로 세워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다.
-그렇다면 용산의 미래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용산은 서울의 중심공간이라는 것이 부각될 것이다. 광화문이 500년 동안 서울의 중심지 역할을 했지만, 지도를 놓고 보면 사실 서울의 중심은 용산이다. 그런데도 용산이 왜 오늘날까지 개발되지 않았느냐에 있어 가장 큰 이유는 청나라 때부터 현재 미군까지 140년 동안 주둔한 외국 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미군 부지를 반환받았고, 그러던 차에 대통령 집무실까지 오니까 용산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뉴타운 사업, 용산공원 조성 등 용산 지역의 개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남 뉴타운 개발이 이뤄진다면 용산은 국제업무지구, 용산공원에 이어 최고급 거주지까지 갖추게 된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에 살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 뭔지를 물어보면 ‘주거’를 꼽는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말고는 주거 형태가 다양하지 않고 고급 단독주택 주거지는 한남동과 성북동 몇 군데밖에 없다. 그러나 개발이 이뤄진다면 보광동 일대도 고급 주택지로 거듭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용산공원과 남산의 면적을 합치면 약 600만㎡가 되는데, 그러면 용산은 세계 도시 중 가장 넓은 녹지와 공원을 가지고 있는 도시가 된다.
-강북의 미래로 광화문과 용산 두 축을 말했다면, 강남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강남 블랙홀’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데에는 통치자나 서울시를 비롯한 권력자들의 역할이 컸다. 또, 냉전의 산물로 강남이 태어났기 때문에 냉전이 확실하게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서울은 계속 강남 중심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강남 블랙홀’ 현상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내가 생각했을 때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는 광역 인프라라고 본다. 역대 서울시장들은 강남·북 불균형 해소를 내걸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사업과 뉴타운 사업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도시재생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 그렇지만 강남·북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았다. 강남의 촘촘한 지하철 노선과 새로운 고속도로 등 교통 인프라가 한강을 넘어와야 한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도 강북으로 넘어온다고 이야기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강남에 국한됐다. GTX, 신분당선 연장선 등도 용산으로 끌어올려 고양시까지 가게 해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BC분석(비용편익분석)에서 경제적 타당성이 안 나오니까 진행이 쉽지 않다.
불균형의 또 다른 원인은 휴전선이다. 6·25 전쟁을 겪은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남한은 북한을 계속 배척하면서 정권을 강화해왔다. 국가 안보를 내세우면서 개발을 시작하고 전쟁에 대비한 가능한 모든 정치, 경제, 문화의 축을 강남 중심으로 개발해온 것이다. 냉전으로 인한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휴전선 이남 지역에 기업을 유치하고 북한 노동자들을 채용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발상도 해봤다. 지금은 군사제한구역이라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이런 걸 만들어 놓으면 남·북한이 서로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기 때문에 싸울 필요도 없게 된다. 이렇게 하려면 국가에서 아예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기업들이 들어오면 세제 혜택을 주면 된다. 중국 등 외국인 투자자, 해외기업도 베팅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동시에 광역 인프라도 과감하게 휴전선 근처까지 당겨줘야 할 것이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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