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2년…공연업계, 양극화 심화
거리두기 조치 강화 때마다
대학로 오픈런 티켓 대부분 취소
대극장공연은 희소성에 예매대란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준비 중인 차기작은 아직 없습니다. 업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당분간 대리운전 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대학로에서 성황리에 초연과 앙코르 공연까지 마친 20년 차 뮤지컬 배우 김모씨(42)에게 향후 공연 계획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관객들이 모두 떠난 뒤 적막해진 배우 대기실에서 만난 그는 더 이상 무대 주인공이 아니었다.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한 사람의 노동자였다. 공연 연출진마저 "투자가 들어오지 않아 더 이상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코로나19 2년 차인 올해 공연시장(뮤지컬·연극에 한정)에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은 ‘양극화 심화’다. 대학로 중심의 소규모 공연장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배우나 스태프들은 백신 접종률 증가에도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며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한다. 반면 대형 공연장은 보복소비와 연말 특수로 단숨에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22일 기준) 대학로 외 지역 민간 공연장 매출은 677억원으로 2019년 하반기 전체 매출(802억원)의 84.4%까지 회복됐다. 같은 조건에서 대학로 매출은 229억원으로 78.9% 수준까지 올라왔다. 겉으로 보면 두 공연지역의 매출 회복세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공연 개막편수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학로 외 지역은 2019년 하반기 889편의 공연을 개막했으나 올해 하반기엔 이보다 44.2% 줄어든 496편을 개막했다. 공연을 줄인 만큼 가격을 올려 매출을 방어한 셈이다. 2019년 하반기 때와 개막편수가 동일했다면 올해 하반기 매출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같은 기간 대학로의 개막편수는 398편에서 475편으로 되레 20.3% 증가했다.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되는 대학로 공연장에서는 이익 감소를 감수하고 ‘박리다매’로 생존전략을 짰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대학로 공연장의 경우 정부의 거리두기 방역대책에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대학로 전체 매출의 절반가까이가 오픈런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오픈런은 공연이 끝나는 날짜를 지정하지 않고 지속해서 공연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오픈런 관객은 마니아가 아닌 이제 막 공연을 접하는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공연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대학로 주변 상권에서 지인과 만나기 전이나 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공연을 보는 소비성향을 가졌다. 대학로 식당·카페 영업시간과 사적모임 규제가 이뤄지면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혜진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정보지원팀장은 "공연장 규모에 따라 티켓 가격이 고정된 데다 신규 관객 유입도 줄어든 게 대학로 공연시장 회복세가 더딘 주요 원인"이라며 "코로나19 상황의 대학로는 일부 마니아 매출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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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대형 공연장은 방역대책 강화에 따른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공연 관람이 주 목적인 마니아층이 대부분인 데다 티켓 가격 자체도 높게 형성돼 있다. 정부의 거리두기 조치가 강화되면 대학로 오픈런 티켓은 80% 이상 취소되지만 대극장 공연은 오히려 희소성이 부각돼 예매대란이 일어난다. 중고시장에서 가격이 치솟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최근 정부의 접종증명·음성확인제(방역패스) 도입으로 객석을 100% 열 수 있게 되면서 ‘보복소비’와 ‘연말특수’ 효과도 극대화되고 있다.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대형 공연장은 잃을 때 많이 잃고 벌 때 많이 버는 구조라 최근 공연시장 회복 국면에서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대학로의 경우 초기투자와 흥행, 대중화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창작 위주의 시장이라는 특수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연법 개정을 통해 창작시장을 지원하는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 시국을 제외하면 공연업은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내면 3차 도약을 하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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