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중세 유럽 최강의 군대 중 하나로 불리던 스위스 용병대는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독일용병대인 란츠크네히트 부대에 참패를 당하면서 유럽 역사의 주역에서 밀려났다. 당시 스위스 용병대의 위상이 회복되지 못한 이유는 스위스 용병대가 "거지 패거리"라고 경멸하던 란츠크네히트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애초 란츠크네히트는 독일에서 스위스 용병대를 벤치마킹하겠다며 베껴 만든 용병부대였다. 다만 군율이 매우 엄정한 스위스 용병에 비해 복장이나 규율이 매우 자유로웠다. 북을 치며 행진하다가 동네 부랑자나 지명수배자, 빚을 많이 져서 도망치려는 채무자 등 사회 밑바닥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용병으로 채용했다. 병사들은 서커스에 나오는 광대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들의 영웅담을 떠들고 다녔다. 스위스 용병대는 물론 유럽 대부분의 병사들은 저건 군대도 아니라며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오합지졸로 불리던 란츠크네히트가 유럽 최강이라 불리던 스위스 용병대를 패배시킨 것은 유럽 전역에서 충격적인 소식으로 전해졌다. 스위스 용병 패배의 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도 엄정한 군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외지인 없이 순수 스위스인들로만 구성된 스위스 용병대는 300년 넘게 내려온 조상들의 밀집보병 전투방식을 고수하며 매뉴얼에 맞춘 통일되고 기계적 움직임을 매우 중시 여겼고, 개인의 자율적 움직임이나 새로운 전략의 도입을 극도로 꺼렸다.
이와 반대로 란츠크네히트군은 늘 각계각층에서 새로운 용병들이 모집돼 들어오면서 유럽의 최신 전술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개별 병사들도 영웅담만 떠든 게 아니라 새로운 전술이나 전략, 자신들이 보고들은 정보들을 자유롭게 내놓았다. 그러다보니 전투가 끝나면 각종 전술을 두고 늘 토론의 장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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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토론을 통해 란츠크네히트군은 스페인에서 새로 만들어진 보병체계인 테르시오 체제를 재빨리 자신들의 방식에 맞춰 받아들였고, 당시 최신 무기였던 화승총도 대량으로 운용하며 낡은 전술에 얽매였던 스위스 용병대를 전멸에 가까운 참패로 몰고 갔다. 침묵하는 전사들보다는 시끄러운 오합지졸들이 더 무서웠던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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