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청와대 기록물 이관 절차 강행 속 비밀 지정권자 논란 거세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대통령 권한대행'이면 기록물 지정권도 대행한다" vs "법 제정 취지나 법리를 오해한 과잉 해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후 청와대 기록물의 비밀(비공개ㆍ보호 기간) 지정권을 누가 갖고 있는 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몫이라며 이번 주부터 기록물 현황 파악ㆍ분류 등 이관을 강행하고 있지만, 기록물 전문가ㆍ학자들은 그렇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20일 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은 이번 주 중 청와대 비서실ㆍ경호실 및 산하기관 등 22개 기록물 생산기관들과 이관 일정을 확정해 차기 대통령 선출 전까지 기록물 이관을 마칠 계획이다.
문제는 기록물의 비밀 여부 지정권자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기록원 측은 '대통령기록물법' 제1조 1항과 제17조 1항을 근거로 황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궐위된 박 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해 지정권을 갖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 제2조1항을 보면 '대통령기록물'을 대통령과 대통령 권한대행, 대통령 당선인'의 직무 관련 기록물ㆍ물품로 정의해 놓고 있다. 제17조1항은 대통령이 기록물 보호기간(15~30년)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규정한다.
두 조항만 놓고 보면 황 권한대행이 비밀 지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이에 대해 이재준 대통령기록관장은 "법률상 권한대행도 대통령기록물 지정권자에 분명히 포함돼 있으므로 황 권한대행에게 권한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기록관 측이 근거로 들고 있는 제2조1항은 단순히 '대통령기록물'의 정의에 불과하다.
특히 대통령기록물법의 취지ㆍ목적상 해당 기록물을 생산한 당사자인 대통령만 비밀 지정권을 갖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구체적으로 대통령기록물 제17조를 보면 ▲국가 안보 및 경제 위해 초래가 우려되거나 ▲인사에 관한 기록물 ▲개인 사생활 ▲기관과 기관간 의사소통기록물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물 등만을 비밀로 분류해 15~30년간 보호하도록 해놨다. 상식적으로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개인 사생활이나 정치적 견해ㆍ입장 표명 기록물 등에 대해 비밀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또 행자부의 주장대로 대통령과 권한대행ㆍ당선인 등에게 모두 비밀지정권이 있다고 한다면 임기말 현직 대통령ㆍ당선인이 동시에 존재할 때 누구에게 지정권이 있는 지 결정할 수 없는 '모순'도 발생한다.
결국 이런 입법 취지와 상식ㆍ모순 등을 종합해 볼 때 대통령 본인이 아닌 다른 그 누구도 비밀 지정 권한을 대행할 수 없다는 얘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또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이 대통령 지정기록물을 정할 수 있다'고만 해놨다. 즉 임의 조항일 뿐 강제ㆍ의무 조항이 아니다. 따라서 황 권한대행이 비밀 기록을 지정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이관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국기록전문가협회 관계자는 "청와대나 황 권한대행은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공범들로 볼 수 있는 데, 그 증거물들이 고스란히 공범들에게 넘어가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라며 "2016년 12월 9일 대통령 직무정지 이전에 대통령이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을 완료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인정될 수 있으며, 그 시점 이후에 대통령은 물론 그 누구도 지정행위를 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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