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전자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관세 위협'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당장 관세가 올라가게 되면 프리미엄 제품 시장인 미국에서 국내 업체들의 실적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에 장벽 건설 비용을 대기 위해 멕시코산 제품에 수입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멕시코에서 수입되는 모든 제품에 대해 20%의 관세를 매겨, 연간 수십억 달러를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 특히 멕시코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은 이 상황이 현실화 될 경우 관세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미국에 가전공장 구축을 검토해왔다. 최근에는 휴대폰 공장을 세우는 방안까지도 검토 대상에 포함시켰다. 아직까지 미국 내에서 정확한 공장 부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여러 후보지를 놓고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현재 멕시코 티후아나, 게레타로 등에 있는 공장에서 TV와 세탁기, 냉장고를 생산해 관세 없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전체 생산량의 40% 가량을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빠지면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이득이 사라진다.
지난해 9월 인수한 미국 럭셔리 빌트인 가전 전문업체 데이코의 로스앤젤레스(LA) 생산 공장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전공장을 짓는 것 자체에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며 "생산성 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모두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LG전자 역시 미국 테네시주에 가전공장 설립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 브라질, 베트남, 중국, 터키, 경남 창원 등 세계 곳곳에서 생활가전 공장을 가동 중인 LG전자는 북미 시장에서 판매되는 물량을 주로 한국과 멕시코 공장에서 조달하고 있다. LG는 올 상반기 안에 구체적인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LG전자를 이끌고 있는 조성진 부회장 역시 이같은 흐름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생산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해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세탁기 반덤핑 문제로 한국이 13.5% 고율(관세)에 맞았고,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겨갔는데 베트남도 그런 형태가 되면 우리가 어디로 가느냐. 중국으로 갈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검토는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당장 업계가 미국 공장 설립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비용 때문이다. 국내 가전업계가 멕시코,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생산하면서 인건비를 확 줄이고 제품가격 경쟁력을 맞출 수 있었는데 인건비가 높은 미국에서 과연 제품가격을 맞출 수 있겠냐는 얘기다. 인건비가 싼 중국 제품과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한 견디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에도 세탁기 반덤핑문제 등으로 한국 업체들이 손해를 봤던 만큼 미국 공장을 짓지 않을 경우에 돌아올 '보복성' 문제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투자 압박이 지속될 경우 해외 기업들이 버티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도 나오고 있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정권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미국 기업들도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 기업들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며 "미국 내에서 판매할 제품들만이라도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결국엔 미국 내 생산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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