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청탁성 예산 대거 포함' 지적에 반박.."확실히 검토"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박춘섭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사진)은 5일 내년도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도 쪽지 예산이 여지없이 반복됐다는 지적에 대해 "재정 당국 입장에서 볼 땐 이번에 쪽지 예산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박 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회 상임위원회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은 사업이 쪽지 예산에 해당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쪽지예산은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이나 특정 사업 예산의 편성 또는 증액 등을 위해 쪽지로 예결위 소속 의원이나 계수조정소위원회 위원에게 부탁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 상임위 및 예결위 소위 등에서 감액과 증액을 심사한다.
상임위나 소위에서 필요성이 제기된 모든 사업은 예결위 소위 심사 책자에 반영된다. 책자에 반영되지 않은 사업에 대한 예산을 요구하면 정부는 이를 쪽지 예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박 실장은 "예산 증액을 검토할 때 여야 의원들이 요구하는 사업은 반드시 예결위 책자에 기록하게 돼있었다"며 "책자에 없으면 검토 자체를 안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말 그대로 문서, 이메일 등을 통한 옛날식 '쪽지' 예산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상의 쪽지 예산' 논란은 상임위와 예결위 심사 중 증액 요구를 겨냥한 것이라 박 실장 해명과는 거리가 있다. 쪽지 예산 관행이 사라졌더라도 회의 석상에서의 구두·서면 질의 만으로 얼마든지 민원성 예산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400조5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에 쪽지 예산이나 다를 바 없는 각종 민원·청탁성 예산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예결위 증액 심사 과정에서 지역구 민원 사업으로 제기돼 심사 대상이 된 것만 총 4000여건, 40조원 규모에 달했다. 일각에선 국정 농단 파문 속 예산 심의 과정에 대한 공론화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소리소문 없이 쪽지 예산이 통과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 실장은 "예비타당성 조사나 타당성 재조사가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한 예산 지원 요구가 많았으나 모두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예산실에서 그런 부분을 확실히 검토했다"며 투명성·효율성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예컨대 중부고속도로 확장 사업, 새만금 수목원 설립 등 현재 예타 조사가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해서 예산 증액 요구가 많았지만 반영하지 않았다고 박 실장은 전했다.
다만 박 실장은 "이른바 쪽지 예산을 없애기 위해서는 증액 심사 과정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면서 "심사 방식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여러 면을 종합적으로 봐서 국회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산안 처리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합의에 대해 박 실장은 "유아교육지원 특별회계를 만들고 3년간 한시 지원하기로 했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많다고 생각해 동의하지 않았지만, 국회 합의를 받아들여서 예산안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는 내년 8600억원, 2018년과 2019년에는 누리과정 예산 소요분의 45%를 책임지게 된다.
국회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4000억원 증액한 데 대해 그는 "정부안에서 1조9000억원을 줄이기로 한 만큼 국회에서 4000억원이 늘어났어도 여전히 (전년 대비) 1조5000억원이 감소하게 된다"면서 "SOC 정상화가 될 때까지는 이런 것이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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