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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초대석]권태신 원장,"위기는 고통유보의 결과…전략산업, 정부가 방향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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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초대석]권태신 원장,"위기는 고통유보의 결과…전략산업, 정부가 방향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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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경호·김혜민 기자]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지난 13일 1시간30여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부와 국회, 노사 모두를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했다. 지난해부터 "자칫하면 한국경제가 제2의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라던 그의 경고를 귓등으로 흘린 경제주체들에 대한 울분이었다. 그는 지금의 조선ㆍ해운 위기, 나아가 경제 전반의 위기는 이들이 고통을 '유보'해 온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위기, 위기 떠들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아

권 원장은 자신이 오랜 기간 몸담은 공직사회부터 칼을 겨누었다. 그는 "'변양호 신드롬'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5년 단위 정부는 책임을 안 지려고 한다. 구조조정 시기를 미루고, 뒤로 넘기기만 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주도해야 하는 국책은행도 뒤로 미루기 바빴다"고 말했다.

변양호 신드롬은 2003년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주도했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구속된 사건에서 비롯된 말이다. 변 전 국장은 약 4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여파로 공무원들 사이에선 책임질 만한 결정을 회피하는 풍조가 생겼는데 이를 부르는 말이 바로 변양호 신드롬이다.


권 원장은 "해법은 알지만 누구도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는 시장과 민간에서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은 타이밍인데 이런 태도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변양호 신드롬 아직도 관가에 퍼져있어

권 원장은 "원칙적으로 구조조정은 시장 자율구조조정, 즉 경제논리에 바탕을 두고 진행돼야 한다"면서도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전략사업에 대해선 큰 그림을 가지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조선ㆍ해운ㆍ석유화학ㆍ철강ㆍ건설 등 5대 취약업종에서 살릴 부분과 정리해야 할 부분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원칙만 정부가 제시해 주고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이해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원장은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받는 조선ㆍ해운 산업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전략산업은 다시 필요한 때가 있기 때문에 지원해야 할 건 하되, 안 되는 건 빨리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 산업의 경우, 벌크선과 같은 일반 상선은 이미 중국에 주도권을 뺏긴 만큼 잘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쪽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철강과 유화산업 역시 '자발적ㆍ선제적ㆍ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해 나가고, 정부는 제도적 환경 조성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비롯해 사업재편 등 혁신에 소극적인 기업에도 일침을 가했다. 권 원장은 '썩은 사과론'을 예로 들며 "예전엔 버스 차장이 앞뒤로 있었고 짚신 장사도 있었지만 현재엔 존재하지 않는다. 옛날 것을 고집하면 망하는 거고, 이젠 앞을 보고 변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변화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외의존도가 높고 외국과의 교역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국제경쟁력을 생각하면 구조조정을 미룰 수가 없다. 더구나 현재와 같이 국제경쟁력과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용으로 다른 기업과 경쟁이 안 될 때는 구조조정을 해서 다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대주주와 노조 모두의 고통분담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아시아초대석]권태신 원장,"위기는 고통유보의 결과…전략산업, 정부가 방향내놔야"


◆말뫼(조선)의 눈물 이어 디트로이트(차)의 파산 재현될 우려

권 원장은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요조건인 감원에 대한 노조의 저항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와 국제 경쟁력평가기관, 국제기구, 우리나라에 와있는 외국 기업인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권 원장은 전국 2600만명의 근로자 중 대기업 노조로 가입돼 있는 140만명의 근로자 약 5% 때문에 2400만명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인건비가 워낙 비싼 데다 고용도 보장돼 있어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원만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 비정규직을 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다같이 살려고 하다 다같이 죽게 되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는 경고다.


대표적 강성노조 사업장인 현대자동차노조의 현재와 같은 고임금ㆍ저생산성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면 자동차메카였던 디트로이트의 파산과 같은 쓰라린 경험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조선업종의 '말뫼의 눈물'로 그치지 않고 울산도 자칫하다가 '디트로이트의 눈물'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권 원장은 구조조정 논의과정에서 매번 등장하는 노사정 합의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합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노동개혁의 성공모델로 꼽히는 독일의 하르츠개혁도 게르하르트 슈뢰더 수상이 주도해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인 결과다.


◆20대 국회 기업 신나게 투자하도록 해 줘야…김영란법 부작용도 적지 않다

권 원장은 19대 국회에는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아직도 기업들의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미흡해 보인다"며 "노동개혁법은 19대 국회가 처리할 의지가 없어 보이고,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역시 국회 논의과정에서 재벌 특혜 논란에 휩싸여 반쪽짜리 법이 되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기업이 일자리 등에 신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한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오는 9월 말 시행 예정인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권 원장은 "현실에 맞지 않게 규제를 통해서 뭘 하려고 하면 그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며 "비현실적으로 묶어두면 부작용만 심해지기 때문에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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