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SH공사 사장의 '체인지 서울 프로젝트'…개발보다 '재생'
주거복지 서비스기관 변신 박차…새 브랜드 '행복둥지'로 새 출발
다가구·다세대 저층주거지 정비…'역세권 청년주택' 주거대안 기대
[아시아경제 대담=소민호 건설부동산부장, 정리=최대열·조은임 기자]"집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할 땅도 여력도 만만치 않지요. 더구나 수많은 요구들이 있어요. 임대주택 관리를 민영화하자는 움직임,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처럼 민간이 공급하자는 목소리도 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SH공사라는 공공기관이 왜 존재하는가를 고민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변화를 해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기관의 성격과 서비스 등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했고, 새롭게 태어나는 중입니다."
변창흠 SH공사 사장은 간만에 강단에 선 것처럼 말을 이어갔다. SH공사의 변화를 선언하고, 그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 배경과 내용을 1시간30여분 동안 쉼없이 조목조목 풀어놨다. 지난 22일 오후 5시 집무실에서 만난 자리에서다.
무릇 변화는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누구나 어떤 계기를 맞으면 변화를 지향하고 실천하겠다고 맹세를 한다. 그런데 변화의 노력을 기울일 당시에는 무언가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무엇이 변화했는지 회의적일 때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개인이 아닌 조직, 그것도 공공조직에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더 어렵다. 개인의 의지를 넘어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공유하고 체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작업은 무척 더딜 수 있고 자칫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변 사장은 벌써 어느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면서 눈을 반짝였다. 앞으로도 계속 변화를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민의 만족도를 높일 방법으로서도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2014년 11월 사장으로 취임했으니 (임기) 절반이 지났다"는 그는 "처음 설정한 비전이 '주거 복지 서비스 기관'이었는데 이에 맞춰 주거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가 제시한 변화는 가령 이런 방향이다. '공공디벨로퍼'로서 건설 후 관리와 운영에 참여해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해외의 민간디벨로퍼가 하듯 50년, 100년을 보고 장기적으로 시공과 관리를 맡겠다는 뜻이다. 민간주도의 재건축ㆍ재개발사업이 가진 빈틈을 SH공사와 같은 공공이 메워나가야 한다는 게 변 사장의 의견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연유는 과거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공급의 한계를 느꼈던 때문이다. "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방식은 사업자가 돈을 끌어모아 완성을 시킨 후 손 털고 떠나는 것이죠. 그 사업을 통해 낙후된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나 새 아파트에 들어온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임대주택 입주자가 임대료는 제대로 내는지, 원래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서울이란 도시를 그렇게 내버려둬서야 되겠습니까."
변 사장은 '저층 주거지 모델'을 찾아내기 위해 고심 중이다. 뉴타운 식의 대규모 재개발이 모범답안이 아닌 상황에서 소규모로 저층 노후 주택을 정비하자는 차원이다. 저층 주거지의 대세가 단독주택에서 1990년대 들어 다세대ㆍ다가구주택으로 변해왔는데 골목길을 살리면서도 이웃간 대화가 단절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SH공사가 뉴타운 해제지역이나 노후화된 저층 주거지를 살려내기 위해 추진 가능한 프로젝트는 약 20가지. 다세대ㆍ다가구주택 매입부터 위탁관리, 맞춤형 임대주택, 가로주택정비사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걸어서 5~10분 거리에 작은 도서관이나 주차장, 집수리 지원센터, 택배 집ㆍ배송센터를 만들어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골목길이나 후미진 곳 등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 보안을 보강해주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렇게만 하면 아파트에 비해 취약한 부분을 개선해 대규모 개발을 지양하면서도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한국형 골목길 문화를 보전해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렇게 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이에 시나 구청 등 공공에서 직접 지원하거나 건축주 등 사업자에게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앞으로 10년, 20년 도시의 변화모습을 내다보면 서울의 경쟁력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고도 했다.
최근 청년층 주거지 대안으로 등장한 '행복주택'에 대해선 "발상의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인터뷰 바로 전날 SH공사가 공급한 상계장암지구 청약 첫날 경쟁률이 6대1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줬다. 그간 임대주택이 저소득층ㆍ장애인 등 사회취약계층만 대상으로 했다면 행복주택은 젊은층의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다르다는 얘기였다. 지금껏 임대주택 입주자 선정의 우선권을 무주택 기간이 얼마나 오래 됐는지, 가족수가 얼마나 많은지로 하다보니 자연스레 임대주택 단지가 '실버타운'처럼 인식되고 활기가 없었다.
서울시와 함께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역세권 2030 청년주택'은 행복주택과 함께 또다른 주거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통문제와 수익성 확보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역세권 주택은 임대료를 시세보다 약간 낮은 수준으로 책정하도록 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또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했던 '역세권 시프트'와 달리 입지를 보다 역세권에 가깝게 한 데다 용도변경을 허용해주고, 인허가 절차도 간소하게 만들어 리스크를 줄였다.
변 사장은 "시 차원에서 규제를 풀어서라도 청년 주거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라며 "민간의 개발사업을 유인해 역세권 주거수요를 충족시키리라 본다"고 말했다. SH공사는 민간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역세권 사업 지원센터를 만들고 10개 팀으로 나눠 시내 곳곳에 배치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이 공공기여와 사업성 정도를 토지주에게 설명해줄 계획이다. 은행 융자를 위해 미분양 시 임대 확약도 추진 중이다.
변 사장은 최근 새로운 주거 서비스 브랜드로 '행복둥지'를 도입했다. SH공사가 공급하고 관리하는 주택에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그는 공공에서 제공하는 주택이 소위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자리매김하는 행복둥지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SH공사가 조성한 아파트에서는 분양주택과 임대주택 입주자가 서로 거리낌 없이 어울리며 운영하고, 병원이나 학원 등과 협력을 맺어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한부모 모자 안심주택이나 의료안심주택, 여성안심주택, 예술인 주택, 홀몸어르신주택 등 맞춤형 주택을 통해 행복둥지라는 정체성이 시민들에게 각인될 것이라며 SH공사가 하는 일은 행복둥지라는 입소문이 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변 사장의 잇단 변화 시도가 5년 후에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어떤 결과물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조은임 기자 goodn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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