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대금을 지불하거나 송금하고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핀테크(금융기술)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금융혁명이라고까지 평가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핀테크 열풍은 정체돼 있는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켰고 금융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와 기업 모두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0여년 만에 신설되는 은행'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달고 2015년 11월 카카오은행과 케이뱅크 2곳이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예비인가를 받았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본인가 후 영업을 개시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탄생하면 금융실명제와 개인정보보호 장벽을 넘어서서 비대면 영업이 가능해지고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계좌개설ㆍ자금이체는 물론 전자거래 방식으로 외환거래 신고까지도 가능하다. 로보어드바이저 등을 통한 온라인 기반 자문서비스, 빅데이터 정보를 활용한 중금리대출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해지기 위해 넘어야 할 큰 장애물로 은산분리규제가 다시 떠올랐다. 현재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예비인가를 받은 K뱅크와 카카오은행 모두 이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K뱅크 컨소시엄에는 상호출자제한집단인 KT가, 카카오은행에는 최근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지정된 카카오가 포함돼 있다. 은산분리규제를 완화해 주지 않는다면 두 은행의 핵심이 되는 두 기업 모두 의결권 있는 지분은 4%만 보유할 수 있다.
최첨단의 정보통신기술(ICT)과 자본력을 가진 기업이 인터넷은행을 적극적으로 설립할 유인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금융플랫폼시장을 눈뜨고 코 베이듯 외국 기업에 뺏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준비한 인터넷전문은행이 이제 막 출발하려는 찰나에 규제에 막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의 규제대로 4%룰을 적용할 경우 참여 기업의 사업성이 낮아지고 수익모델에 차질이 생겨 사업계획이 무산될지도 모른다. 급한대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서라도 산업자본의 지분율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해외에서는 핀테크 산업과 관련된 금산분리는 거의 폐지돼 산업자본의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이 허용돼 있다. 미국의 경우 은행업과 증권업의 겸업을 금지하는 글래스-스티갈법(Glass-Steagall Act)을 근거로 금융업종 간 상호진출을 엄격히 제한해 왔으나 1998년 이 법을 폐지했다.
우리와 비슷한 규제를 가지고 있는 일본도 비금융기관이 20% 이상의 은행지분을 소유(인터넷전문은행은 50%까지 허용)할 수 있도록 은행법을 개정한 뒤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이 활발하다. 중국의 경우도 텐센트의 위뱅크와 알리바바의 저장 인터넷 전문은행이 다양한 금융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면서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권 금융소비자를 흡수하고 있다.
국내 상황은 아직도 과거에 묶여있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기업이 은행돈을 맘대로 할 수 있게 되며 산업의 부침에 따라 금융시장도 요동치게 되는 위험이 발생한다는 우려를 한다. 하지만 대주주를 견제하고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하도록 하는 많은 규정들이 이미 법령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대기업집단의 지배주주가 금융회사를 개인 금고처럼 이용하거나 금융회사의 자산으로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대상품 뿐만 아니라 기업투자상품을 취급하는 금융은 산업과 이미 위험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인데 은산분리라는 지분 제한만으로 위험 전이를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OECD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금융회사의 소유가 분산되고 기관투자자들이 대주주의 지위를 점함으로써 금융회사 경영에 대한 감독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핀테크 산업이 국경 없는 금융시장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우리도 충분히 글로벌 1위가 될 수 있고, 반대로 글로벌 1위에게 국내 금융시장을 모두 빼앗길 수도 있게 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핀테크 산업 활성화에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은 핀테크의 기초가 되는 플랫폼이다. 이제 막 시작단계인 국내 금융기관이 글로벌 기업들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집약적 투자가 최선의 전략이다.
김미애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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