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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세상을 바꾼 110층 외줄타기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0초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하늘을 걷는 남자'
익스트림 스포츠 유행시킨 곡예사 페팃 실화 다뤄

[이종길의 영화읽기]세상을 바꾼 110층 외줄타기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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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걷는다. 396.24m 높이(110층)에서 외줄타기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아찔한 도전이지만 프랑스의 곡예사 필리페 페팃(66)은 불가능을 몰랐다. 1974년 8월 7일, 뉴욕의 하늘을 배경으로 우아하게 걸음을 내딛으며 새로운 예술을 창조했다. 당연히 불법인 이 퍼포먼스를 그는 '예술적 쿠데타'라고 명명했다. 맞다. 아름다움이 정점에 이르고 세상은 바뀌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갖가지 묘기를 펼치는 익스트림 스포츠는 활기를 띄었고, 서류 넣는 캐비닛이라고 놀림을 받던 쌍둥이 빌딩은 뉴욕 시민의 자랑으로 탈바꿈했다. 시적이면서 영광스러운 인류의 한 역사 공간으로.

페팃의 극한 도전이 극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로 재현됐다. 에세이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To Reach The Cloudsㆍ2008)'를 통해 회자됐던 이야기는 이미 제임스 마쉬(52) 감독의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2008)'로 영화화됐다. 그럼에도 거장 로버트 저메키스(64) 감독이 직접 각본까지 썼으니 한 이상주의자의 원대한 도전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페팃은 다른 시공간에서 툭 튀어나온 사람 같다.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요즘에 이야기가 동화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카메라는 한 인간이 장대를 들고 다른 쪽으로 건너가려고 애쓰는 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위험을 무릅쓰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풀어간다. 도구를 존중하는 등 세부적인 것에 집중하는 페팃을 완벽주의자로 그리면서 관객에게 '당신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조용하게 속삭인다. 사실 6500만달러(약 743억원)를 들여 영화를 제작한 것부터가 모험이다. 외줄타기 하나만을 123분 동안 쫓아가는 건 지루한 일이다. 범죄를 모의하는 과정이 케이퍼필름으로 전개되지만 영화는 디테일까지 실화를 따른다. 사랑이나 우정 등에서 생기는 갈등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세상을 바꾼 110층 외줄타기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


저메키스 감독은 페팃(조셉 고든 래빗)의 고집스러운 목적의식을 집요하게 조명한다. 질서를 어기는 페팃은 잘난 척하기 바쁘고 타협 없는 인물이다. 첫 장면부터 자신이 프랑스에서 온 선물인 것 마냥 자유의 여신상 꼭대기에 올라 자랑스럽게 경험담을 늘어놓는다. 그 이야기는 동화처럼 나열되지만 전반적인 서술에 다큐멘터리적인 시각이 깔려있다. 조력자들에게 짜증을 내고 거사를 두려워하는 페팃이 성격 파탄자나 다름없게 묘사된다. 그는 다른 예술가들처럼 두려움을 보이면서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희망을 얻는다. 천재성이 아닌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일을 반드시 해내겠다는 보편적 지성이 그의 도전을 완성시켰다.


페팃은 외줄타기를 예술가적 기교라고 말한다. "몸과 영혼, 손에 쥔 장대가 하나가 되지 않으면 균형을 잡을 수 없다. 열정과 영혼이 없으면 줄 위에 선 멍청한 광대일 뿐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행위의 절정은 평온하다. 귓가를 스치는 건 바람소리뿐이다. 날아가는 새마저 조용하고 평화롭다. '맨 온 와이어'는 그 우아함을 최근 침대 CF에 자주 등장하는 에릭사티의 '짐노페디 1번' 선율로 극대화했다. 저메키스 감독은 아주 긴 롱 숏을 사용했다. 보통 영화 한 편이 2000컷 정도로 구성되는데, '하늘을 걷는 남자'는 826컷밖에 쓰지 않았다. 3D 아이맥스의 심도와 광활함을 심어 처음 줄을 타는 관객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하지만 페팃이 내딛는 첫 걸음에 관객의 의심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걱정을 밀어두고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에 집중하게 한다. 도전을 강요받으면서 부정적인 시선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거장이 전하는 뜻 깊은 선물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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