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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계좌라도 좀…" 증권맨의 구걸같은 읍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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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못간 증시호황의 후폭풍
-상반기 초과실적에 목표치 더 올라…부인·자녀 명의 쪼개 실적 채우기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30대 펀드 매니저 A씨. 요즘 A씨의 마음은 차가워진 바람만큼 서늘하다. 상반기만 해도 연초 후 50%에 달했던 펀드 수익률이 최근 3개월동안 -20%대로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화장품, 헬스케어주를 주로 사들이며 또래 매니저인 '용대리', '용과장'들과 중소형주 장세를 주도했지만 단꿈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요즘 펀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날마다 판매사와 주요 고객을 찾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A씨는 "장이 이렇게 빨리 식어버리니 솔직히 너무 힘들다"면서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서면 펀드 수익률이 더 꺾일 것 같아 지금은 최대한 현금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운용사보다 더 힘든 쪽은 증권사다. 증시가 밀리면 운용사 펀드에는 저가 매수성 자금이 들어오지만 증권사에 뭉칫돈을 들고 찾아오는 고객의 발걸음은 뚝 끊긴다. 증권사 영업직원인 C씨는 "증시 호황으로 연초 목표를 상반기에 모두 달성해 회사가 목표치를 상향 조정했는데 하반기 장이 급랭하면서 실적 압박이 심해졌다"며 "손님이나 거래처 직원에게 퇴직연금 계좌라도 우리 회사로 옮겨달라고 부탁하는 등 하루하루를 읍소하면서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보통 11월 누적 실적을 바탕으로 12월 인사평가를 하는데 어떤 증권사는 10월까지 실적을 맞추라고 한 곳도 있다"며 "그나마 우리는 나은 편"이라고 했다.

한 대형 증권사는 캠페인 압박이 절정에 달했다. 상반기 영업 실적 조기 달성으로 경영진이 3~4분기 지점 평가 항목에서 매출을 뺀 대신 신규 고객과 기존 고객 계좌 유치 비중을 강화하면서다. 무매출 고객 활성화, 1억원 미만 고객 1억원 이상 만들기, 투자 경험 없는 고객에게 종합자산관리 랩어카운트 판매가 영업 일선에 주어진 전략 과제다.


이 증권사 직원 D씨는 "전략 과제 3개 중 하루에 1개라도 달성하지 못하면 밤늦게까지 퇴근도 못하는 분위기"라며 "1억원 이상 신규 계좌 유치를 위해 고액 자산가 계좌를 부인이나 자녀 명의로 쪼개서라도 실적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 증권사 한 지점에서는 직원의 권유로 계좌를 나눈 후 증여세를 납부하게 된 고객이 거세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하반기 시황이 나빠지면서 추석 떡값도 못 받았다"며 "최근 증시가 회복되고 있지만 대외 악재로 또 다시 삭풍이 거세게 불까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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