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시샘]세 살 아이의 죽음 앞에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8초

빨간 셔츠, /진청색 반바지. /물거품 치는 모래바닥 /얼굴 묻고 누운 세 살배기.
시리아 북부 코바니 마을 /골목 귀퉁이 주저앉아 /돌멩이 구슬치던 /아일란 쿠르디.
총소리 들리는 밤 /덜깬 잠 비비며 /아빠 손 잡고 /보따리 든 다섯 살 형 갈립 /바지 엉덩이 붙잡고 /시리아에서 터키로 /터키에서 그리스로 /거기 가면 맘 놓고 살 수 있다는 /유럽의 어느 섬으로
그 섬에 가면 흰 갈매기랑 /하루 종일 놀 수 있다고 /엄마는 말했지 /그 섬에 가면 /파도소리 베고 /잠들 수도 있다고 /엄마는 말했지 보트를 타기만 하면 /우린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별도 없던 그 캄캄한 밤 /보트가 뒤집히고 하늘이 뒤집히고 /아빠도 뒤집히고 형도 뒤집히고 /엄마 엄마 /소리쳐도 엄만 안보였지
널빤지 붙든 /형의 바지 엉덩이 붙잡고 /두리번두리번 아빨 찾았지 /큰 파도가 넘어와 우릴 쓸었지 /그통에 그만 형을 놓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나는 헤엄쳐 갔지
여기가 그 섬인가 /모래 베고 나는 엎드렸네 /파도소리 귀에 걸고 /갈매기 소리 이불처럼 덮네
천국은 아프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네 /엄마가 그랬는데요 /나는 난민 아니예요 /코바니의 세 살 귀염둥이 /아일란 쿠르디.


-이빈섬의 '아일란 쿠르디'


2015년 9월 쿠르디는 터키에서 소형보트에 몸을 싣고 그리스 코스섬을 향해 떠났다가 보드룸 해변 인근 아크야라 지역에서 배가 뒤집혀 변을 당했다. 그의 형(5) 갈립도 목숨을 잃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쿠르디 일행을 태운 소형보트 2대는 23명을 태웠는데, 양쪽 다 전복돼 어린이 5명과 여성 1명 등 모두 12명이 숨졌다. 죽은 세 살바기 소년의 사진 한 장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들을 무방비로 받을 수는 없다는 차가운 이성이 다시 그들을 막아 세우고 있다.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과 그것을 막는 사람들에게, 모두 이유는 있다. 태어나 이제 삶을 펼치는 한 아이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모습에 대한 기억 하나로, 세상의 논리를 바꾸기는 버겁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 똑바로 바라본 한 아이의 기구한 운명을, 잊기 전에 여기 기록해두고 싶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