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 사과문에서 이건희 회장 언급, 사과 자체에 무게 두고
신뢰 - 사과문 작성시 실무진과 후속 대책 직접 논의 "지킬 수 없는 약속 없어야"
겸손 - 첫 공식석상 의전 스스로 거절, 사과문 발표 후 삼성병원으로 향해 의료진 격려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3일 발표한 대국민 사과에서 진정성, 신뢰, 겸손 3대 가치를 담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스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의 대국민 사과가 자칫하면 정부나 국민들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문구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며 3대 가치를 담는 데 주력했다는 후문이다.
3대 가치는 이 부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경영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이 대국민사과를 직접 주문하고 문구수정까지 꼼꼼히 챙겼다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진정성=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결심한 직후 18일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를 하기 위해선 실제 삼성서울병원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환자와 의료진들의 고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대국민 사과를 위한 사과문 작성 과정에선 사과문을 직접 세심하게 살피며 문구 하나하나에 진정성을 담고자 노력했다.
억지 사과가 아닌,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의견이었다. 사과문에서 1년여 동안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부친, 이건희 회장을 언급한 것도 메르스 감염 환자와 가족들의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는 후문이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사과문에는 조금이라도 변명이나 해명이 있어선 안되고 의료진에게 책임을 넘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의견이었다"면서 "단어 하나, 문구 하나까지 세심하게 직접 점검하며 진정성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신뢰=이 부회장은 사과문 작성과 함께 "실제 실행할 수 없는 후속 대책은 사과문에서 모두 빼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사과문에 구체적인 후속 대책이 포함됐다가 빠진 이유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장황하게 열거하는 대신 "환자 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하겠다"는 대목만 포함한 배경이다.
의료진들에게 국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후속대책을 마련하되 이는 꼭 지킬 수 있는 대책이어야 된다고 주문한 까닭이기도 하다. 장황하지 않은 작은 대책이라고 해도 신뢰가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에서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 실리주의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지난주 예정돼 있던 북미 출장도 미루고 사과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본인이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의견이었다.
◆겸손=이 부회장은 일체의 의전을 거절한 채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약 3분간의 사과문 낭독 도중 이 부회장은 두차례 단상 옆으로 물러나와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이 스스로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상시 이 부회장은 경영 성과가 자신에게 돌아올때 마다 계열사 사장들에게 공을 돌리며 직접 나서는 것을 피해왔다. 삼성가 오너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실무진들이 항상 더 높게 평가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생각이다.
첫번째 공식무대가 사과자리였던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자신이 주목 받는 자리에는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오너로서 책임져야 할 자리는 직접 나가야겠다는 겸손의 가치를 담은 행보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사과와 관련한 대중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은 것으로 관측된다"면서 "메르스로 야기된 위기를 직접 사과로 정면 돌파했다는 점, 자신이 경영 가치로 두고 있는 진정성, 신뢰, 겸손을 보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내릴만하다"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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