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통합진보당 가입자 명단을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통합진보당 상당수의 당원이 검찰 등의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통합진보당에 가입한 경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정당해산 결정을 넘어 소속 당원들의 법적, 사회적 처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 결정은 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결정이라는 점 외에도 정당해산 결정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던 혁명조직 RO의 실체에 대해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서로 충돌했다는 점도 주목을 끌고 있다.
헌재는 정당해산 결정에서 RO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RO의 '국가기간시설 파괴 계획'을 주요 해산 근거로 제시해 사실상 RO의 실체를 인정했다. 반면 지난 8월 서울 고등법원은 이 의원의 내란음모 재판과정에서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으며 RO의 실체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동일한 사실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헌재의 민사소송법을 준용한 재판소송 방식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통합진보당 측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헌재의 재판진행방식과 관련해 문제제기가 있었다. 정당해산심판 절차를 형사소송법을 준용(따라야)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법 40조1항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에 관하여는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민사소송법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은 행정소송법을 준용해서 이뤄지고, 탄핵의 경우에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판이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정당해산심판의 경우 어떤 소송법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하여 정확한 규정이 없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측 변호인은 줄기차게 "정당해산 결정은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보다 그 권리 박탈 정도가 훨씬 큰 ‘해산’이라는 제재를 갖고 온다는 점에서 민사소송보다 형사소송에 가깝다"며 "민사소송 절차가 아니라 형사소송 절차를 준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민사소송법을 준용했다. 어떤 소송법을 준용하는지 여부는 재판내내 쟁점이 됐다.
민사소송을 따를지 형사소송을 따를지를 두고 재판부와 변호인단간에 큰 이견을 보인 이유는 소송방식에 따라 증거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형사소송의 경우 피고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엄격한 증거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민사소송의 경우에는 증거채택 범위가 형사소송 보다 넓다. 또한 법을 어겨가며 확보한 증거의 경우 형사소송에서는 증거에서 배제할 수 있지만 민사소송의 경우에는 채택을 할 수 있는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에서는 피고의 방어권 보장과 불리한 증거들에 대한 반대신문을 보장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시한 증거에 대해서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절차가 있지만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공문서는 진정하게 성립된 것으로 추정하도록 해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두고 다툴 수가 없다. 통합진보당 변호인단은 민사소송법을 따를 경우 정부와 재판을 진행하는 통합진보당으로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통합진보당 변호인단은 "정당해산심판절차에서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증거법칙이 아닌 사적 이익의 조정과 분쟁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민사소송절차의 증거법칙에 따라 사실의 확정이 이루어진다면 정당의 특권을 규정한 헌법정신과도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헌재 역시 정당해산결정을 민사소송법으로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지난해 헌재는 국회에 제출한 헌법재판소법 개정 의견을 통해 정당해산심판절차에서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할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정작 헌재는 올해 1월7일 이같은 통합진보당의 요구에 대해 "헌법상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한다고 결정한다"고 판결했다.
복수의 법조인들은 재판이 민사로 진행되느냐 형사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재판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교수는 "소송방식에 따라 재판결과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재판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인들의 경우에도 "민사소송법이냐 형사소송법이냐에 따라 증거능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이번 정당해산 결정은 단순히 특정한 정당을 해산한 것 뿐 아니라 가입한 당원의 법적, 사회적 처벌 가능성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증거채택 등에 있어 엄격한 채택방식을 따르고 있는 방식의 재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통합진보당 가입 당원은 10만명이며 이 가운데 3만명은 돈을 냈던 진성당원이다. 아울러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5명의 국회의원직을 상실케 하는 판결을 내렸다. 탄핵과 같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자격을 상실하면서 소송절차는 형사소송법이 아닌 민사소송법을 따른 것이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국회에서는 정당해산심판의 경우 탄핵과 마찬가지로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이법은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기 때문에 여야에서 손을 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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