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을 둘러싼 논란을 돌이켜보면 노벨상 근저에 간 과학자들은 네 부류로 나뉠 성싶다. 상을 탄 사람, 탔어야 하는 사람, 타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 상을 탈 뻔한 사람이다. 2008년 노벨상 시상식에는 노벨상을 탈 뻔한 사람이 참석했었다. 그 해 노벨화학상은 녹색형광단백질을 발견하고 그 메커니즘을 규명한 오사무 시모무라, 마틴 챌피, 로저 첸 세 과학자가 받았는데 녹색형광단백질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데 시발점이 된 연구는 더글라스 프래셔라는 미국 해양생물연구소 연구원이 미국암협회의 20만달러 연구비를 받고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그는 후속연구를 위해 미 국립보건원에 연구비를 신청했으나 얻지 못하고 다른 기관으로 옮겼다가 결국 연구비를 확보하지 못해 학계를 떠났다. 노벨상 소식이 날아올 무렵 프래셔는 앨라배마 도요타 공장에서 시급 8.5달러의 셔틀버스 운전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해 수상자들은 시상식에 프래셔와 그 아내를 초청했고 프래셔는 로저 첸 교수의 랩에서 다시 연구자로 일하게 되었다.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노벨상을 탈 뻔한 과학자가 연구비 사정이 어려워 버스운전사를 하고 있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는 기초과학의 선두를 달리는 미국에서조차 과학을 하면서 먹고 살기가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연구비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은 연구비에 의존하는 일자리 사정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 생명과학 분야에서 박사 졸업 5년 후 정년트랙 교수로 재직하는 비율이 70년대 초만 해도 55%였는데 지금은 15%를 밑돈다.
과도기적인 훈련과정으로 시작된 박사 후 과정(포닥)은 70년대 초에는 거의 없다가 지금은 포닥만 전전하는 '평생' 포닥이 수두룩하다. 평균 잡아 학부 4년, 석박사 과정 5년, 포닥 3년 무려 12년을 캠퍼스에서 보내고도 대학에 자리 잡는 사람은 열명 중 둘도 되지 않는 것이다. 고학력 실업이 심각하다지만 이들 '초'고학력 실업은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고 사회적으로도 무지무지한 낭비인 셈이다.
프래셔 얘기를 접한 것은 지난 학기 대학원 수업 교재 중 과학기술인력 시장 문제를 다룬 책에서였다. 저자는 오랫동안 경제학적 분석틀로 과학정책을 연구해온 나이 지긋한 할머니인데 올해 학회에서 만날 기회가 있어 늘 궁금하게 생각했던 질문을 하나 던졌다. 과학기술인력 양성을 일종의 파이프라인으로 볼 때 할머니 말처럼 우리가 초고학력 박사를 과잉생산하고 있다면, 말단에서는 박사들이 일자리를 못 구해 아우성인데 앞단에서는 이공계 위기라며 학생들 보고 이공계 들어오라고 '꼬시는' 것은 앞뒤가 한참 안 맞는 게 아니냐. 말하자면 이공계 진로는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끝이 엄청 뾰족한 깔때기인 셈이다.
할머니 대답은 이랬다. 과학기술 개별 분야 사정이 다르지만 고학력 인력이 공급 과잉인 분야가 많은 게 사실이다. 파이프라인 말단에 이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 대학, 공공기관의 인력 수요와 처우가 나아지지 않으면 초고학력 낭비는 지속될 것이다. 반면 앞단에 이공계 전공생이 모자란다는 것은 이들을 모두 이공계 인력으로 키우려는 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교양을 갖춘 시민이 모자란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올해도 카이스트 국감에서 단골 메뉴로 이공계장학금을 받고 의학전문대학원 등으로 '먹튀'를 한 학생들이 지적되었다. 안정적이고 돈 되는 분야로 '튀고' 싶은 마음은 다들 굴뚝 같을 터인데 요놈들을 이공계에 어떻게 잡아둘 것인가. 이공계 위기 문제는 원체 원인과 결과가 엉켜있어 감히 한 자 쓰기 겁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개인의 의지와 선의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정책은 인간이 천사가 아닌 이상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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