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최근 들어 스마트폰을 통해 개인의 사생활을 담은 동영상이 유포돼 범죄ㆍ집단 관음증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급속히 늘고 있다. 개개인의 주의는 물론 사법 당국의 강력한 단속ㆍ처벌과 제도적인 개선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얼마 전 30대 직장인 김 모씨는 우연히 친구로부터 카카오톡으로 받은 동영상을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 한 20대 여성이 상의를 완전히 벗고 하의도 간신히 속옷만 입은 채 한 나이트클럽에서 봉에 매달려 춤을 추고 있고 팬티만 입은 남성이 바짝 붙어 여성의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김 씨가 더 놀란 것은 이를 말리기는커녕 그 장면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수많은 스마트폰 불빛들이었다. 김씨는 "이런 동영상이 촬영되고 스마트폰을 통해 널리 퍼졌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라며 "사람들이 죄의식도 없이 집단관음증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동영상은 최근 '옥타곤녀'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례는 일각에 불과하다. 한 건설업자의 강원도 원주 별장 성접대 동영상, 4월 초 종교 관련 여대생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촬영한 동영상, 지난해 말 검사 성추행 여성 피해자 사진, 미스코리아 출신 유명 방송인 성행위 동영상 등 잘 알려진 '집단관음증'의 사례들 외에도 성관계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협박ㆍ폭력을 일삼는 일이 관련 범죄의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6월 말까지 이런 문제에 대해 '기획 상담'을 진행한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상담 의뢰가 들어 온 몰카 협박 사례는 모두 26에 달한다.
몰카를 무기로 헤어진 당사자가 ‘다시 만나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16건(61.6%)으로 가장 많았다. 협박을 시작한 시기는 피해자가 헤어지자고 통보한 직후가 18건(69.3%)으로 가장 많았다.
이처럼 이같은 동영상ㆍ사진 등의 유포는 대체로 '스토킹'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헤어지는 연인에 대한 보복의 수단이나 지속적인 협박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배포 경로는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유포한 것들이 P2P 등 파일 공유 프로그램과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사례가 많다. 최근 들어선 단지 '즐기기 위해' 유포되는 것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룻밤 즐기기 위해 만난 후 촬영한 것, 또는 '옥타곤녀' 동영상처럼 클럽 등에서 촬영된 것들이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있다.
실제 고소 등 사법 처리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었다. 성폭력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는 몰카 범죄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민우회 상담사례 중 실제 고소를 진행하고 있는 사건은 2건(7.7%)에 불과했다. 절반(13건·50%)은 고소를 원하지 않았다. 가족이나 직장·학교 등 주변에 알려질까 봐 염려하거나, 형사고소를 했을 때 증거자료로 제출한 성행위 촬영물 파일을 경찰이 보게 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자신과 관련된 동영상 등이 유포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피해자들은 그야 말로 '멘붕' 상태에 빠진다.
이선미 여성민우회 간사는 "협박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게 되는데, 피해자들은 모든 대외 활동을 중단한 채 대인공포증 등 '공황 증세'를 겪는다"며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절망감, 또 길을 가다 만난 이들이 자신을 알아 볼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린다"고 전했다.
문제는 단속이 어렵고 처벌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의 특성상 개인 간의 유포는 사실상 추적ㆍ단속이 기술적으로 어렵다.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동영상이 오갈 경우 5~6일 이내에 관련 정보가 모두 삭제돼 경찰의 압수수색 등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속이 집중될 때는 조용히 있다가 시간이 지난 후 올리고 내려 받는 지능범들도 많다. 게다가 피해자가 목격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단속할 근거가 없다. 단속되더라도 "메모리 카드를 우연히 잃어 버렸다"는 식으로 빠져나가면 기껏해야 벌금 등의 처벌에 그칠 뿐이다.
이 간사는 "지난 1월부터 법이 개정돼 동의해서 촬영한 동영상이라도 함부로 유포하면 처벌하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현실에서 얼마나 저지력을 가질 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아무리 친하고 허물없는 사이라도 사생활을 촬영하는 것은 삼가고 조심해야 하며, 경찰 등 사법 당국도 강력한 단속 의지를 갖고 미흡한 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여성민우회는 최근 '성행위 촬영물 유포 협박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피해자들의 대응 방법 매뉴얼을 배포해 관심을 끌고 있다.
상담소 측은 연애할 때 촬영한 나체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하는 경우 우선 협박은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한 말일 뿐, 가해자의 행동은 중단시킬 수 있고 지금의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강조했다. 당황해하지 말고 침착하라는 얘기다.
상담소 측은 이어 상대방에게 협박의 내용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 확인을 하고, 그 즉시 저장해 중요한 증거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또 협박 내용이 담긴 문자나 이메일은 반드시 저장해두고, 전화 통화와 대화 내용도 녹음해 둔다. 협박의 내용과 시간, 장소 등을 정확히 기록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가해자에게 '협상은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해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상황을 장기화시킬 뿐이며, 주변의 지지자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경고해야 한다.
또 수집해놓은 증거를 갖고 경찰에 상대방을 카메라이용 촬영죄ㆍ협박죄ㆍ정보통신법위반으로 신고하는 등 정면 대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 처한 상황이 비록 '악몽'같지만, 가해자의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믿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상담소 측의 조언이다.
상담소 측은 이어 자신 몰래 촬영된 성행위 동영상 파일을 인터넷 등에서 발견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우선 동영상에 대해선 모른 척 하거나 숨기는 것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므로, 정면 대응하는 것이 최선임을 깨닫고 바로 행동하는 것이 좋다. 자책하고 후회하는 데 시간을 보내다보면 오히려 동영상만 더 확산될 뿐이다. 이어 동영상을 본 즉시 다운로드해 저장하고, 게시된 화면을 캡처해 두는 등 증거를 확보해 둔다.
특히 동영상이 게시된 인터넷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경찰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는 등 파일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심한 모멸감, 자괴감 등에 시달릴 수 있다. 이에 따라 믿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주변의 사람을 찾아 힘을 얻거나 성폭력 상담소에 상담을 요청해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끔찍한 상황은 영원하지 않으며, 곧 끝날 것이라 믿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상담소 관계자는 "몰래카메라와 성행위 촬영물로 인한 피해 상황에서 피해자가 혼자만의 경험으로,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차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대응을 위한 매뉴얼을 배포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