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아시아 신흥국 증시 급락에 코스피가 1900선을 내줬다. 인도·인도네시아 등의 위기설이 아시아 증시의 동반 하락으로 이어졌다. 경제성장률이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태국 증시는 19일과 20일 각각 3.27%, 2.77% 하락했고, 통화 가치가 4년내 최저수준으로 폭락한 인도네시아 증시 역시 이틀 연속 5% 이상 하락하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그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로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경우 국내증시에도 여파가 미칠 수 있어 투자자들의 우려가 크다. 아시아 신흥국의 경기 둔화가 한국의 수출 둔화로 이어지면서 기업이익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날 낙폭이 컸던 화학·철강 업종의 경우도 아세안(ASEAN) 국가들에 수출 비중이 높은 업종들이다.
21일 시장 전문가들은 아시아 신흥국의 외국인 자금 이탈과 경기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악재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차별적 경기모멘텀이 부각되면서 국내 증시로의 외국인 자금 유입이 계속될 수 있고, 미국과 유럽의 경기회복세가 한국의 대 아세안 중간재 수출을 꾸준히 유지시킬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중섭 대신증권 스트래티지스트= 아시아 신흥국 금융시장에 대한 불안감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에서부터 시작됐다. '버냉키 쇼크'가 처음 발생했던 지난 5~6월에도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외국인 자금 이탈이 발생하며 신흥국 증시의 급락으로 이어졌다. 다만 현재 상황이 지난 5~6월과 다른 점은 한국 증시에서의 외국인 동향이다. 당시에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 전체에서 자금이 이탈했지만, 지금은 아시아 신흥국에서의 자금 이탈에도 불구하고 한국증시로는 외국인 자금이 오히려 유입되고 있다.
당시와 사정이 달라진 것은 유럽 지역의 경기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글로벌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수개월 전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2분기 경제성장률(전년동기비)의 턴어라운드가 확인됐고,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3개월 연속 상승하는 등 한국의 경기 역시 이미 저점을 통과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도 5 ~ 6월과 상황이 달라진 점이다. 과거 한국의 외국인 순매수가 경기의 방향에 민감하게 움직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경기의 회복과 함께 외국인 자금의 증시 유입 역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다른 아시아 신흥국과 비교해 한국이 차별적인 경기모멘텀을 갖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다른 아시아 신흥국에서 이탈한 자금이 한국 증시로 유입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경기둔화가 지속되면서 다른 아시아 신흥국에서는 통화약세가 나타나고 이는 다시 증시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차별적인 경기모멘텀이 부각되면서 원화가치는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증시에서도 외국인 자금의 유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차별적인 경기모멘텀과 환율의 안정 이외에도 다른 아시아 신흥국 증시와 비교해 가격 매력이 높다는 점도 다른 아시아 신흥국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이유이다. 아시아 신흥국 증시와 비교했을 때, 한국 증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형성된 상대 PER이나 PBR 밴드의 하단에 위치해 있어 가격 매력이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 경기의 회복을 감안하면 대외 의존도가 다른 아시아 신흥국에 비해 높은 한국경제가 더욱 탄력적인 회복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차별적인 한국의 경기모멘텀이 한국 증시의 가격 매력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을 지속시킬 것으로 판단한다.
전일 증시에서 낙폭이 크게 나타났던 업종이 화학과 철강업종이다. 그 동안 유럽 지역의 경기회복 기대를 바탕으로 다른 업종과 비교해 상승률이 높았던 업종이다. 높은 성과를 보였던 이들 업종에서 조정 폭이 크게 나타난 것은 이들 업종이 아시아 신흥국으로의 수출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ASEAN이 한국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높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신흥국의 경기둔화가 한국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내수부진에 따른 아시아 신흥국의 경제성장률 둔화에도 불구하고 순수출의 성장률 기여도는 최근 글로벌 경기회복과 함께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재현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인도·인도네시아 등의 불안이 외환위기설로까지 번진 것은,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두려움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현상이다. 두 국가 모두 자본 유출에 의한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인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이 최하위권에 속하면서도 무역수지 적자는 수년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주가가 펀더멘털을 지속적으로 반영해 왔다면 금융위기 이후 오랜 기간 강세를 보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양적완화 축소 논란이 확대되면서 주가가 급격히 무너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위험의 가장 주요한 변수인 외국인 수급은 한국에서는 오히려 영향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은 선제적으로 매도했다기보다는 매수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커플링(탈동조화)의 한 요인이면서 부담 요인이었던 외국인 수급이, 오히려 위험의 감소 요인이 된 것이다.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덜한 상황에서, 환율과 금리 변동폭도 크지 않았다는 점 또한 긍정적이다. 20일에는 오히려 외국인이 순매수를 기록하고 금리는 하락했다. 금융위기 수준으로 확산될 문제라면 많은 국가에서 장·단기적으로 동일한 위험신호가 나타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아직까지 그러한 신호는 그다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물론 불확실성이 큰 만큼 간접적 영향권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보며, 주식시장은 추가적인 조정의 가능성이 있다. 밸류에이션에 큰 의미를 두기 힘들고 미국 주식시장과의 디커플링도 여전한 상황이므로, 한국의 기술적 위치를 근거로 지수 레벨을 판단해본 결과 단기 조정은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저점은 1810~1840 수준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주식시장의 추가 조정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의 위기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외환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된 부분은 외환보유고 정도로, 기대할 것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높아진 신용등급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환율, GDP 대비 경상수지,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까지 많은 부분에서 차별화되고 있다. 양적완화 축소와 관련한 구체적인 스케줄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 최근 이머징 국가들의 금융 시장이 주기적으로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미국 금융위기 이후 이들 국가들이 취했던 대응 전략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머징 국가들은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말부터 수출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내수 부양을 단행했고, 그 수단으로써 부채를 늘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대응책은 미국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는 내수로 버티고,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 다시 수출이 늘어나리라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제조업 중심의 성장을 추구하는 탓에, 미국 경제가 회복되는데도 이머징 국가들의 부채, 특히 외채를 줄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수출이 생각만큼 늘지 않는데다 내수 부양 정책이 과도한 소비 확대를 통해 경상수지 적자를 가져왔고, 저금리 기조 하에 외채가 크게 늘었는데 이제는 금리가 상승하고 있어 이자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머징 시장의 금융 불안은 간헐적으로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출구전략에 따른 이머징 국가들의 외채 상환 부담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금리가 상승하거나 경상수지 적자가 부각될 때마다 이머징의 외채 문제는 시장의 관심을 끌 것이다. 특히 이머징의 부채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이자 부담을 키울 수 있는 금리 상승은 지속적으로 이들 지역에서 금융 불안의 불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금리가 가장 많이 상승한 국가는 인도네시아로, 5월 중순 이후 최근까지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2.60%포인트 상승했다. 그 뒤로는 1.48%포인트 상승한 홍콩이 있으며 인도가 1.30%포인트, 싱가포르는 1.24%포인트 올라 금리 상승폭이 컸다. 대만,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는 0.40~0.77%포인트로 금리 상승폭이 비교적 작았다. 금리 상승폭이 큰 국가들의 특징은 인도네시아와 인도처럼 경상수지가 심각한 적자를 보이고 있거나 홍콩처럼 최근에 크게 악화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안감이 진정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경상수지 상황이 개선되는 것이다. 당장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더라도 경상수지 적자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결국에는 외환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머징 국가의 금융 불안은 한국 금융시장의 불안도 동시에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긍정적인 면이라면 엔화 강세, 원화 약세의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엔화는 안전 자산으로 선호되는 통화라는 점에서 이머징 금융 불안은 엔화 강세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원화는 이머징 통화라는 점에서 동일한 상황에서 약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한국에 반사 이익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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