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검증 없는 증원은 교육현장 붕괴 초래"
"휴학생 복귀 시 이미 교육 불가…수용능력 확인해야"
"정원 100명인 배에 400명을 태운 꼴이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을 두고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의학 교육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의대교수협)는 지난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의대교육 현장이 직면한 위기를 진단하고, 양질의 의사 양성을 위한 필수 선결 과제를 제시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증원 논의에 앞선 철저한 검증이다. 조윤정 의대교수협 회장(고대안암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은 "2027년과 2031년 등 연도별 시나리오에 기반한 교육·수련 수용력 검증 자료가 먼저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의 추계 결과를 근거로 수차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증원 규모를 결정했지만, 특정 숫자가 아닌 실제 대학과 병원이 추가 인원을 교육할 수 있는지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선행적으로 검증한 뒤 결정을 내렸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그러면서 현재의 급격한 증원을 적재 능력을 초과해 운항하는 '과적된 배'에 비유했다. 의대교육은 단순히 칠판과 분필만 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환자군과 최소 500병상 이상의 부속 병원이 필수적인데, 이를 고려할 때 현재 국내 수련병원들이 수용 가능한 전공의는 연간 3200명 수준이라고 봤다. 이대로라면 내년 증원된 인원이 졸업하는 2031년에는 약 6000명의 졸업생이 쏟아져 나오게 되고, 이들을 수용할 병원 인프라는 전무해 교육 부실이 불가피하다.
조 회장은 "현재 휴학생 중 내년에 복귀할 학생 약 749명을 고려하면 추가 증원이 없더라도 이미 교육 여건상 과밀한 상태다"며 "반면 국립대 중엔 필수의료과 교수들이 1~2명만 남은 의대도 있어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한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의대라는 배가 과적으로 가라앉으면 결국 환자 안전이 즉각 영향을 받는다"며 "교육의 질 확보가 심의 원칙이라면,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체계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데, 사공이 너무 많아서 배가 히말라야 산꼭대기로 갔다"며 "정책을 설계한 정부 관계자가 정말 용감하다"라고 힐난했다.
일각에서 '(증원된) 의대생들이 본과에 올라가기 전까지만 준비하면 된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조 회장은 "현장을 모르는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의학교육은 예과 1학년 때부터 병원과 연계된 끊임없는 학습의 과정이며, 한번 교육에 교수 20명이 투입되기도 하는 등 막대한 자원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지방의대 증원, '의사교육 양극화' 초래할 수도
현재의 의대 증원이 10년 뒤의 대책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협의회 고문을 맡고 있는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지역·필수의료 붕괴라는 흙탕물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정부는 10년만 살아 있으면 지금 의대 간 학생들이 고쳐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교육 여건이 좋은 서울권 의대는 증원 대상에서 빼놓고, 교육 시설이나 인력이 열악한 지방 의대에 (증원) 폭탄을 쏟아부었다"고 비난했다. 이 교수는 "10년 뒤 환자들은 교육의 질이 담보된 특정 대학 출신 의사만을 찾아 헤매는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꼬집었다.
그는 "연평균 668명 증원 규모를 놓고 볼 때 늘어난 의사들이 수련받을 상급종합병원을 서울대병원 규모로 6개나 더 지어야 한다"며 "병원 하나당 보통 7000억원이 드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무너진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가 정상화, 법적 부담 완화, 의료 전달체계 개선 등 즉각 실행 가능한 대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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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회장은 "교육의 질 확보는 실제 교육 대상이 누구인지, 가르칠 사람의 교육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로 결정되고, 강의·실습 운영 계획이 있는지, 환자 접촉 교육과 수련 수용 능력이 확보되는지도 따져야 한다"며 "이 네 가지 조건이 확인되지 않으면 교육의 질 확보라는 말을 정책의 근거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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