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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7장 총소리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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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7장 총소리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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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그런 일이 있고나서 하림은 온종일 쓸모없는 망상에 시달리며 지냈다. 배문자로부터부터 받은 숙제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을 줄 알고 이 시골 구석까지 찾아왔는데, 여기서도 새로운 인연의 그물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옭아 묶어놓으려 하는 것 같았다.
하소연이도 그렇고, 이층집 여자, 수도 고치는 사내, 이장 운학이.... 그들은 사실 얼마 전까진 그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스쳐가도 그만일 뿐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어느새 자기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둥지를 틀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자 다소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당에서 무언가 굴러가며 꽈당거리는 소리도 들렸고, 양철지붕이 덜컹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하림은 저녁을 먹고 나서 소화도 시킬 겸 탁자에 비스듬히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현관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처음엔 소연인가 했다. 그런데 소연이라면 그렇게까지 조심해 할 까닭이 없을 터였다.
“계세요?”
하림이 엉거주춤 허리를 일으키는데 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하림은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현관문 쪽으로 가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 대꾸도 없었다. 하림은 바람 소리를 잘못 들었나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뜻밖에도 아침에 보았던 이층집 여자가 무언가를 들고 서있었다.


하림을 보자 여자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안녕하세요. 실례가 안 될는지 모르겠는데.... 저 아까 아침에 봤던 이층집....”
하고 쭈빗쭈빗 말끝을 흐렸다. 바람 때문인지 하얀 스카프를 보자기처럼 머리와 얼굴에 두르고 있었다.
“아, 예! 들어오세요.”
그제야 하림은 아는 체 하며 몸을 옆으로 비켜주었다. 괜히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이층집 여자는 신발을 벗어두고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처음 오는 사람이 다 그렇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방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들어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집 주인이 서양화가랍니다. 윤재영이란 아줌마예요. 저 역시 그냥 지나가는 손님에 불과할 뿐이죠.”
묻지도 않았는데 하림이 먼저 두서없이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분위기가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져 나름 미리 정보를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여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탁자 위에 놓았다.


“아침엔.... 정말 고마워서.... 집에서 담근 포도주예요.”
“아, 예? 이럴 필욘 없는데.... 어쨌든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하림은 얼른 말하고는 앉으라며 어제 하소연이 앉았던 의자를 권했다. 여자는 약간 주저하는 포즈를 취하더니 스카프를 풀어 의자 등걸이에 걸어두고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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