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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7장 총소리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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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7장 총소리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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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없는 욕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적군이 점령지의 여자를 강간하는 것이 그런 사랑없는 야만적 욕망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욕망이 없는 사랑도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플라토닉 러브가 그것이다.

플라토닉 러브의 고전은 뭐니뭐니 해도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 나오는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일 것이다. 사촌지간인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은 헤어진다. ‘너무나 완전한 사랑’을 꿈꾸었던 이상주의자 알리사는 그들의 사랑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가 바로 헤어져야할 때라고 말한다. ‘너무나 완전한 사랑’ 다음엔 일상의 구차함이 기다리고 있다는, 또는 사랑이 식어가는 내리막길 밖에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대신 좁은 문을 통해 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길을 택하도록 자신과 제롬을 독려한다.
너무나 고전적이고, 너무나 종교적이고, 너무나 경건하여, 지금은 아무도 그런 사랑 따위를 믿지도 않고 그런 사랑을 지고지순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드물 터이지만, 어쨌거나 그런 플라토닉 러브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그 둘을 함께 칵테일처럼 섞어서 살아간다. 사랑 조금, 욕망 조금.... 이런 식으로.... 그게 보통 사람들의 사랑 방식이다. 사랑 없는 욕망이 맹목이라면 욕망 없는 사랑 역시 위선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대상에 따라 그 섞여진 비율은 달라질 것이다. 어떤 경우엔 사랑이 더 지배적이라면 어떤 경우엔 욕망이 더 지배적인 것이 된다. 혜경이에 대한 마음이 전자라면 소연이에 대한 마음이 후자에 속할 것이다. 사랑은 미안할 필요도 없고, 더더구나 후회할 필요도 없다. 사랑은 누가 뭐래도 용서가 된다. 사랑은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은 미안함을 남기고 후회를 남긴다.

소연이가 그런 경우였다. 하림은 그녀에게 죄라도 지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녀 역시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먼저 손을 꺼내어 잡은 사람도 소연이었다. 하지만 그게 핑계거리가 되지는 못하였다. 어쨌거나 그녀는 어렸고, 절제력을 발휘할 위치에 있은 사람은 하림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욕망이 때때로 사랑의 씨앗을 남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남자와 여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가장 약한 모습, 즉 사랑이 움트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점령지의 여자를 강제로 범한 병사가 오히려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냥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걱정마요. 나도 오빠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소연이 그 말이 지금도 여운처럼 하림의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녀의 외로움, 그녀의 상처가 하림의 얼굴에서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고 가슴 깊은 곳 현을 건드리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에겐 넘어가야할 강이 있었다.
혜경이란 이름의 강.... 지고지순한 사랑은 아닐지라도 그녀를 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여자분이 부럽네요. 좋은 남자와 결혼도 한번 하고, 또 하림 오빠처럼 멋있는 남자의 사랑도 받고....’
소연이는 혜경이 부럽다고 했다.
후후. 과연 그럴까?
어쩌면 사람들은 다들 남의 겉모습만 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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