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차키스의 최고의 작품으로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아닌 다른 걸 꼽고 싶다. 그건 고향 크레타 섬에 있는 그의 묘에 세워져 있는 비석의 문구다.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고 포효했다. 이 세 마디 말은 그의 삶의 응축이었으며, 그의 삶의 결산이었다. 자유로운 영혼다운 단호한 삶의 종언(終言)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 묘비 앞에 선다면 아마 나는 그 묘비, 또 그 안에 누워 있을 그로부터 담대한 웅변보다는 쓸쓸한 비탄을 들을 듯하다. 평생 자유를 추구했지만 죽는 순간까지 그 누구보다 자유를 갈구했던 한 영혼의 처절한 토로와 절규를 듣게 될 듯하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혹은 유언을 생각하며 내일이면 4주기를 맞는 어떤 이의 죽음과 유언을 생각해 본다.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진 그가 남긴 마지막 말,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넋두리이기도 하며 자기 독백과도 같았던 유언을 남긴 이의 마지막 날을 생각해 본다. 그는 죽음으로써 하나의 '신화'가 됐는데, 많은 이들에게 그의 죽음은 분명 한 시대의 죽음이었다. 그가 내던진 것은 자신의 몸이자 한 시대였다. 우리는 그를 초연하게 삶을 내던진 영웅, 한 시대의 비범한 인물로서 애도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 그가 행한 일, 지극히 사소한 행위에서 가장 큰 '충격'을 느꼈다. 죽음으로 향해 가는 길에 그는 불쑥 몸을 굽히더니 길가의 잡초를 뜯었다. 그 몸짓, 그것이 내게는 유언보다 더한 말을 던지는, 유언 이상의 '유행(遺行)'으로 비쳤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으로 몸을 굽혀 풀을 뜯었을까. 혹시 그는 마지막까지 머뭇거렸던 게 아닐까. 유서를 남기고 나왔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삶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형수의 마지막 발걸음처럼 그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정말 죽어야 하는지 몇 번을 되묻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지상의 최고 권력에 올랐던 그였지만, 나는 그 '고별의식'에서 그가 보통 사람임을 보았다. 죽음이 두렵고 삶이 간절했던 지극히 평범한 이를 봤다. 나는 그의 비범성이 아니라 그의 평범성을, 그의 초연함이 아닌 그의 나약함을, 그의 담대함이 아닌 그의 번뇌를 보았고, 그래서 눈물을 쏟았다. 그는 우리였고, 나 자신이었다. 그것이 그의 죽음을 생각할 때 내가 진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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