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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버리는 지혜

시계아이콘00분 56초 소요

이사를 앞두고 짐을 정리하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났다.


"나이 쉰을 넘기면 한 번쯤 옷장을 열어보라. 그리고 걸려 있는 옷 가운데 최근 1년간 입지 않은 것들은 눈 딱 감고 내다 버려라. 그 옷들은 앞으로도 입지 않을 공산이 크다."

누가 한 말인지는 잊었으나 탁견이 분명하기에 따르기로 했다. 근데 '최근 1년'을 기준으로 살생부를 작성하니 의외로 남는 옷이 몇 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최근 2.5년(3년으로 할지, 춘하추동으로 할지 고민하다 중간에서 타협했다)으로 늘렸더니 반쯤은 다시 옷장에 걸 수 있었다. 이렇게 옷장의 반을 덜어내자 이삿짐이 한결 가뿐하다.


내친김에 신발장도 열어젖혔다. 옷장과 마찬가지로 (쪼글쪼글 주름살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내 서글픈 삶의 분신들로 그득했다. 이사 갈 집의 신발장 형편이 넉넉지 못한 걸 감안해 '최근 1.5년'을 기준으로 절반 이상 비워냈다.

다음에는 뭘, 하고 두리번거리다 딱 마주친 게 냉장고. 그렇지만 인간사 의(衣)와 식(食)은 엄연히 다른 법, 이번엔 한층 강화된 '입고기준 2달'로 털어내니 식탁은 금세 이런저런 비닐봉지로 가득 찼다.


옷과 신발류를 갈무리해 1층에 내다 놓고 올라왔더니 (그것도 일이라고) 허기가 엄습한다. 잘됐다 싶어 선택한 휴일저녁 메뉴는 섞어찌개. 식탁에 나와 있는 온갖 것을 냄비에 한데 몰아넣고, 부글부글 끓인 뒤 온 가족 둘러앉아 오순도순 나눠 먹은 것까진 좋았는데…. 어떤 봉지에 담겨 있던 어떤 음식이 문제였는지 우리 일가족은 그날 밤 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으니…. 복잡한 뱃속 사정은 하루 이틀로 잠잠해졌지만, 고약한 건 머릿속에 '무슨무슨 기준으로 무엇을 내다 버리면 아주 편해진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틀어박힌 것이다. 그게 뭐 대수냐고 가벼이 여길 분도 계시겠지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내는 몇 년쯤 지나 버려야 하나' 또는 '직장은 몇 년 단위로 바꿔야 하나' 등등.


글=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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