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 대전충남 축산공판장
정부 지원융자로 생산성·위생·환경 개선
자동화·자원화 성과 가시화
정부가 추진해 온 FTA(자유무역협정)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도축을 넘어 품질과 신뢰를 담보하는 인프라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부경축산물공판장, 자동화·자원화로 '규모와 효율'을 끌어올려
부경축산물공판장의 변화는 정부 지원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공판장은 2023년 축산물도축가공업체 지원 사업을 통해 국고 융자 36억원을 확보했고, 이를 도축·가공시설 전반의 현대화에 집중 투입했다. 계류장 확충, 자동 이송 설비 도입, 위생·환기 시스템 개선 등 핵심 투자가 단계적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공판장이 자체 자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대규모 구조 개선의 출발점이 됐다. 공판장 측은 "일시에 큰 비용이 투입되는 도축장 설비 특성상 융자 지원이 없었다면 개선 속도는 크게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FTA 보완대책이 현장에서는 사실상 구조 전환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시설 개선의 방향은 공정 자동화 고도화와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기반 위생관리 강화가 핵심이었다. 계류장을 확장하고 가축 이동 동선을 재정비해 수작업 의존도를 낮췄고, 도축 공정 흐름을 표준화해 작업자 숙련도 차이에 따른 편차를 줄였다. 출하 농가들이 오랫동안 제기해 온 장시간 대기 문제와 계류장 혼잡, 악취 민원 역시 설비 재배치와 공정 분산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됐다. 물량이 몰릴 때마다 반복되던 병목 현상이 줄어들면서, 작업 효율 개선에 따른 간접 비용 절감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공판장 관계자는 "예전에는 물량이 몰리면 현장 부담이 그대로 품질 관리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설비가 받쳐주면서 작업 흐름이 훨씬 안정됐다"며 "도축장이 '현상 유지형 구조'에서 '관리 중심 구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위생 관리 수준 역시 한 단계 끌어올렸다. 고온·저온 살균 장치와 위생 세척 라인을 확충하고, 오염 교차를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설비를 도입해 도축 과정 전반의 위해 요소를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반복 공정은 자동 정형·이송 설비로 대체해 품질의 균일성을 확보했고, 작업자의 피로도를 줄이면서 공정 안정성을 높였다. 배기·환기 설비와 폐수 처리 시설 개선은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동시에 악취 저감 효과로 이어져, 환경 관리 부담도 완화됐다.
이 같은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부경축산물공판장의 소 도축량은 시설 개선 이후 87.7% 증가했고, 돼지 도축량도 53% 늘었다. 단순한 물량 확대가 아니라, 자동화 설비 도입으로 단위 시간당 처리 능력이 안정적으로 확대되면서 과거 반복되던 병목 현상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물량이 늘어도 라인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품질 편차와 재작업 발생 가능성도 낮아졌고, 이는 단위 도축 두수당 관리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현장 실무자는 "사람 손에 의존하던 공정이 줄어들면서 품질 편차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물량이 늘어도 예전처럼 급하게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가동률 상승이 가져온 운영 효율 개선도 눈에 띈다. 소 도축 가동률은 기존 45.5%에서 53.4%로 상승했다. 가동률이 높아지면서 감가상각비와 유지비 등 고정비가 단위 도축 두수당 분산돼 원가 구조가 개선됐고, 전기·수도·가스 등 유틸리티 비용 역시 규모의 경제 효과로 효율성이 높아졌다.
환경 성과 역시 부경축산물공판장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다. 도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과 폐기물의 자원화율은 99%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는 폐기물 분류·수거 체계를 공정 초반부터 개선하고, 랜더링(도축 부산물을 열과 압력으로 처리해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과정) 공정의 처리 능력과 효율을 대폭 강화한 결과다. 랜더링 설비의 처리 용량을 확대하면서 증가한 도축 물량에서도 폐기물을 전량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공정 손실률을 최소화해 투입된 폐기물 대부분을 자원으로 회수할 수 있게 됐다. 외부 위탁 처리 비용 부담이 줄어든 것도 부수적인 효과다.
포크빌축산물공판장, 농가 경영 안정과 품질 고도화 병행 모델
부경축산물공판장과 함께 대전·충남권에서는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이 FTA 국내보완대책의 또 다른 현장 사례로 꼽힌다.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총 43억원 규모의 융자 지원을 받아 운영자금과 원료육 구매, 도축·가공 설비 개보수에 활용했다. 이 중 약 32억원은 회원농가 운영자금과 원료육 구매자금으로 투입돼 농가의 금융 부담을 완화했고, 약 11억원은 도축·가공·냉각·위생 설비 개보수에 사용돼 품질과 위생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반 투자로 기능했다.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덴마크 등 해외 선진 도축장을 벤치마킹하되, 설비를 그대로 도입하기보다는 국내 작업 환경과 품질 수요에 맞게 공정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개선을 이어왔다. 작업자 동선과 공정 연결 구조를 반복적으로 손보며 도체 육질과 신선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고, 이러한 누적 개선이 품질 지표 개선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성과는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의 소 도축량은 24% 증가했고, 돼지 도축 가동률은 88%에서 94%로 상승했다. 급냉터널과 사전냉각터널 도입으로 도체에서 발생하는 드립을 줄이면서, 육색과 보수력 등 주요 품질 요소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자동화 설비 확충은 작업 강도를 낮추고 산업재해 위험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했다.
포크빌축산물공판장 관계자는 "자동화는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늘어나는 물량을 안정적으로 처리하면서 작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장치"라며 "라인 속도와 공정 특성에 맞춰 적정 인원을 배치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환경 측면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도축 물량 증가에 따라 발생하는 부산물과 폐기물을 위수탁 방식으로 처리하며 재활용 비율을 높이고 있다. 직접 퇴비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폐기물이 퇴비화 등 자원화 공정으로 연계되면서 결과적으로 유기질 비료 생산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도축량 확대와 환경 관리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다.
이들 공판장은 단순 가공시설이 아니라 국내 축산물의 품질과 안전을 지탱하는 핵심 기반 시설이다. 수입육과의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동화와 위생·환경 기준 강화를 통해 신선육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곧 국내 축산업의 방어선이 된다. 현장에서는 융자 중심 지원이 시설 개선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고금리와 에너지 가격 상승 국면에서는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한다.
부경축산물공판장 관계자는 "도축장 경쟁력이 곧 국내 축산물 경쟁력"이라며 "지속적인 설비 개선과 제도적 뒷받침이 이어진다면 수입육과의 경쟁에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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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지원: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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