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급격한 세계화 등에 의해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문제의 크기와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심술궂은(wicked) 문제'가 급증하고 있다. 버클리 대학의 디자인과 도시계획학 교수였던 호스트 리텔과 멜빈 웨버는 '심술궂은 문제'를 '원인이 복합적이며 얽혀 있고' '선례가 없으며', 또한 '정답이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심술궂은 문제는 '길들여진(tame) 문제'와는 대조적인 의미이며, '어렵지만 일상적인(hard but ordinary) 문제와도 구별된다. '길들여진 문제'나 '어렵지만 일상적인 문제'는 정답이 있다. 또한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사용해 한정된 시간 안에 풀 수 있는 문제를 의미한다.
최근 우리는 다양한 '심술궂은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은 예전의 천재지변과는 또 다른 차원의 재난으로 이어진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됐던 금융위기는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강타하면서 전 세계적인 어려움을 야기했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국경을 넘나들며 불황을 확대재생산한다. 물론 해결방법이 마땅치 않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3ㆍ20 해킹사태에서 우리는 세계 어딘가에 있는 해킹조직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 나라의 기간망인 방송 및 금융 네트워크를 마비시킬 수 있음을 경험했다. 네트워크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항생제의 남용과 환경오염 등으로 슈퍼박테리아가 속출하면서 '전염병'의 위험도 위협적이다. 신종플루의 확산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전염병 또한 전 세계에 확산되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안전공학분야에서는 '자연 재난'이나 '인적 재난'과 같은 전통적인 재난의 범주를 벗어나는 복합적인 형태의 '사회적 재난'에 주목하면서 우리도 신속하게 대응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재난'이란 에너지, 통신, 교통, 금융, 의료, 수도 등 국가기반체계가 마비되거나 전염병 확산 및 테러 등으로 사회기본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위험물질 유출, 해양 및 수질 오염, 오존층 파괴, 핵 폐기물 매립, 구조물 붕괴뿐만 아니라 컴퓨터 해킹, 바이러스 테러, 대규모 소요사태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사회적 재난'은 바로 '심술궂은 재난'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심술궂은 재난에 더욱 취약하다. 첫째, 인구 및 네트워크 시스템이 매우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고, 아파트 거주 인구가 60%를 넘는다. 인터넷 및 PC 보급률, 스마트폰 보유율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의 집중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회적 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둘째,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개인뿐 아니라 기관이나 기업의 사이버안보의식은 미약한 편이며 예산이나 관련 법안 등의 정비도 부족하다. 인터넷 뱅킹이나 모바일 뱅킹 인구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금융기관의 보안대책은 아직도 믿을 만한 수준이라 보기 어렵다. 셋째, 안전 관리하는 종합적인 기구나 법령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도 않다. 재해정보시스템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많은 노하우를 구축하고 있는 미국, 일본 등에 비해 우리는 많이 부족한 편이다.
심술궂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고 융합하는 '통섭'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행정안전부'가 '안전행정부'로 직무조정이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회적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갈수록 심술궂어지는데 정부의 인식은 안이한 것 같아 걱정스럽다. 부처명칭 변경으로 비용만 들고 효과는 없었다는 비판은 듣지 않도록 제대로 된 '안전대책 로드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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