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사자리에서 들었던 건배사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건설사에 근무하는 한 인사는 잔을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구호는 알려드리는 대로 따라만 해주면 됩니다. 제가 '대통령님'이라고 선창할 테니 여러분은 '살려주세요'라고 후창하십시오"였다.
그는 이내 잔을 들었고 단도직입적으로 앞 구절을 소리쳤다. 자리에 동석한 이들은 그의 구령대로 "살려주세요"를 복창할 수밖에 없었다. 술잔을 같이 부딪히며 후렴구를 따라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웃음소리와 함께 다소 시끌벅적한 구호가 뒤따랐다. 다른 자리에 앉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겸연쩍기는 했으나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냥 건배구호가 아니던가.
그런데 건설업 종사자가 이렇게 술자리 구호로 최고 통치권자를 향한 애원을 담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건설업계는 지난 정권에 적잖은 실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4대강 건설부터 보금자리주택 건설까지 정책사업을 수행하는 역할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상처를 입었다. 4대강 사업에 참여한 업체는 담합의혹으로 줄줄이 수사를 받거나 과징금을 물게 됐다. 일감을 확보하겠다며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참여한 이후엔 주택시장이 크게 침체되는 부메랑을 맞았다. 이미 벌여놓은 주택은 입주를 꺼리는 이들로 인해 비상에 처하고, 이미 사놓은 택지는 하릴없이 대출이자만 부담시키면서 분양시기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따라서 애원성 건배사를 꺼낸 인사의 의도는 정부가 뭔가 변화를 끌어내 달라는 주문이었던 셈이다. 건설산업이 가진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여전히 높고, 직접적으로 이에 기대 살아가는 이들이 177만명에 달하기에 이대로 주저앉게 나둬서는 안 된다는 뜻이겠다 싶다. 다소 늦춰지고 있지만 부동산대책에 수요자들의 심리를 호전시킬 내용을 종합적으로 담아 시장을 살려달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런 주문이 받아들여졌던 것일까. 정부는 1일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며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를 마련했다. 공급조절부터 수요창출, 하우스ㆍ렌트푸어 지원, 보편적 주거복지 시행방안 등이 고루 담겼다.
특히 과잉공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공급위주의 정책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정확한 판단이요, 적절한 시장대응책이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생애 처음 주택을 마련하게 된 이들에게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기로 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외, 획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종합선물세트라면 내용물은 부실한 채 포장만 번지르르할 것이라는 통념과 확실히 달랐다. 워낙 많은 내용이 담겨 수요자들이 일일이 해석해 정보를 활용하기까지 시간이 좀더 걸릴 것이란 지적이 나올 지경이다.
그렇다면 이런 선물보따리를 받은 시장은 건배사의 바람대로 움직일 것인가가 과제로 남는다. 팔려고 내놓은 주택을 살 사람이 늘어나 거래가 살아나고 새 집을 사려는 이들이 늘어나며 시장이 활기를 띨 수 있을까.
아직 판단하기엔 섣부르다. 작금의 시장상황이 비정상적이었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번 대책이 전향적이기에 희망 섞인 전망이 많다. 다만 변수도 있다. 이번 조치가 집값의 하방경직성을 작동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냐가 가장 크다. 바닥까지 추락한 주택소비심리가 호전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고 시장이 정책으로만 단박에 활기를 띠기는 어렵다. 선창과 후창이 조화돼야 건배사가 완성되듯, 정부의 선물세트에 맞춰 주택시장 공급주체들의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전문가들이 생각지 못했던 대책까지 포함돼 있다고 평가한 것만큼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부마저 공급조절에 들어갈 정도의 시장에서 과거의 기억 속에 파묻혀 지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되새겨야 할 때다.
소민호 건설부동산부장 s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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