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명의 위한 '부부 간 증여' 증가
서초구 '디에이치 방배' 계약 후
한 달 만에 증여비중 35%p 껑충
지난해 서울, 증여비중 7년 만 최저
집값이 고공행진하던 지난해 8월 서울 성북구. 지난해 내내 20건대를 밑돌았던 이 지역의 아파트 증여건수가 갑자기 267건으로 튀었다. 1647가구(일반분양 718가구)에 달하는 ‘푸르지오 라디우스 파크(장위6구역)’ 계약 여파였다.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84㎡ 기준 12억1100만원으로, 서울 동북권 최고 분양가를 다시 쓴 단지였다. 청약 당첨자들이 보유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부 공동명의 변경에 나서게 됐는데, 이를 위해 부부 간 증여가 늘면서 이례적인 수치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절세족들의 ‘증여 재테크’는 서울 지역에서도 높은 분양가에 청약이 이뤄진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됐음에도 넘볼 수 없는 분양가를 기록했던 서초구의 증여건수가 가장 많았으며, 강남구, 송파구 등이 뒤를 이었다. 집값의 양극화가 증여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유세 낮추려…부부 간 증여 많았다
8일 한국부동산원의 ‘거래원인별 아파트 거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아파트 증여거래 비중은 55%(전체 776건 중 427건)로 연중(12월 제외)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 달 전(20%, 778건 중 154건)과 비교해 35%포인트 급등했다. 그해 11월에도 40%(835건 중 334건)로 연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서초구 아파트 증여 비중이 단기간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방배동 ‘디에이치 방배(방배5구역)’의 계약이 영향을 미쳤다. 청약 당첨자들이 이 아파트를 부부 공동명의로 소유하기 위해 계약 시점에 부부 간 증여를 한 것이다.
단독명의가 아닌 공동명의를 활용하면 보유세 부담을 낮출 수 있다. 디에이치 방배는 지난해 8월 분양한 후 9월부터 당첨자 계약을 진행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디에이치 방배의 분양가가 비쌌던 탓에 부부 간 증여를 통해 절세하려는 당첨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디에이치 방배가 3000가구 이상 대단지인 만큼 이런 사례가 많아 일시적으로 수치가 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단지 청약에 따른 증여 증가는 1만 가구가 넘는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당첨자 계약 당시에도 나타났다. 강동구 아파트 증여 비중은 2022년 12월 38%(206건 중 76건)에서 계약이 진행된 이듬해 1월 77%(461건 중 353건)로 치솟았다.
‘디에이치 방배 효과’로 서초구는 같은 시기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가운데서도 아파트 증여 비중이 가장 높았다. 강남구의 경우 지난해 9월 8%(814건 중 63건)에서 10월 20%(705건 중 141건), 11월 14%(676건 중 98건)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송파구는 9월 1%(435건 중 6건)에서 10월 17%(336건 중 57건), 11월 36%(461건 중 166건)로 증가세를 보였지만 서초구 증가 폭에는 못 미쳤다.
공동 명의를 위한 증여 외에도, 올해부터 초고가 아파트 등에 대한 증여세 과세표준이 공시가격에서 시가로 바뀌는 것을 의식한 이들도 증여 재테크에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거래가 많지 않아 시가가 형성되지 않았던 초고가 아파트 등 주거용 부동산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증여세를 신고했다. 만약 시가로 과세표준이 바뀌게 되면 세 부담은 더 커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전체로는 7년 만에 최저
지난 한 해(1~11월) 서울에서 매매, 교환, 증여, 분양권 전매 등 각 아파트 거래 유형 중 증여의 비중은 7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7.5%(8만4011건 중 6297건)로 전년 같은 기간(7.9%) 대비 0.4%포인트 줄었다. 2017년(4.3%)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였다.
전문가들은 서울 전체로 봤을 때 아파트 가격이 오를 만큼 올랐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집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일 때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 자녀에게 물려주는 방식으로 계속 보유하려고 하겠지만, 지금이 가장 비쌀 때라고 생각하니 팔아서 차익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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