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만세를 반복하는 붉은 울트라맨들이 떼지어 일장기 모양을 이뤄내고 있다. 이 작품은 군국주의의 폐쇄성과 전후 일본의 역사성 결여를 시사한다. 다름 아닌 일본화가 야나기 유키노리(1959년생)가 제작한 '만세·코너'란 작품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일본 미술계는 기존의 고급예술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종류의 복합형식 작품과 애니메이션, 대중매체 속 귀여운 이미지와 기계가 결합한 것 같은 독특한 이미지의 작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소비사회 아이콘 등을 투영해 작가들은 일본사회의 현실에 맞서면서 의문을 제기하고 동시대인인 관람객들에게 사색의 참여를 유도한다.
2006년 만들어진 '모든 것은 모든 것이다'(Everything is Everything)라는 작품으로 건너오면, 설치와 영상, 비디오 등으로 평범함을 색다르게 살펴보는 시도가 엿보인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다나카 코키(1975년생)의 작품이다. 일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만든다는 호평을 받는 작가로, 그는 올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단독전시도 펼칠 예정이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일본국제교류기금과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본 현대미술 40년을 조망하는 전시회를 오는 4월 14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적 없는 1970년 이후 작품들을 통해 일본현대미술을 역사적으로 재검토 하고자 기획됐다. 일본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작가 53명의 대표작 112점이 전시된다. 1970년대 서구근대주의를 넘어 동양철학을 접목한 이우환 작가와 '모노하'파, 미술자체의 개념이 중시된 '개념미술', 모더니즘의 계승하면서 1980년대는 이를 사회적으로 분출시켜 일본의 정체성을 담아낸 더 성숙된 미술을 선보였다. 1990년대 이후 서구에서 대중을 상대로 소비, 물질문명을 작품으로 담아낸 '팝아트'와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한 '관계적미술', 최근의 미디어 설치미술작품이 총 망라돼 있다.
더불어 작가들과의 담화 시간도 마련돼 미술비평가, 교수, 연구원 등 한국인 대담자들을 동행해 관람객들의 궁금증을 해소한다. 오는 16일과 내달 6일과 13일 예정돼 있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인 마츠모토 토루 도쿄국립근대미술관 부관장은 "일본에서는 최근 수십 년간 1970년대나 1980년대의 현대미술을 회고하는 전시회가 거의 개최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일본 현대미술의 역사가 그 시간 속에서 지속적인 변화의 축적을 어떤 식으로 이뤄왔는지에 대해 재검토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전시 기획에 참가한 오진이 서울대학교 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일본 현대미술을 통사적으로 훑어보는 이 전시에서는 역사적, 사회적인 조건에 대한 개인적인 분투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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