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지난 해 국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들이 정치권이 명분 논리로 내세운 영업시간 제한 규제 정책에 울상 지을 때 웃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외국계들이다.
물론 여론뭇매에 코스트코가 규제를 따르기로 했지만 국내사들의 매출이 반 토막 나는 사이 코스트코와 일본계 슈퍼들은 국내 영역을 확장하며 반사이익을 고스란히 누렸다.
최근 비슷한 일이 정치권의 명분정책에 또 다시 반복되는 사태가 생겼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외식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제한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나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등 외국계 외식업체들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의 보호를 받아 규제 자체가 쉽지 않다.
동네 밥집이 아니고 외국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내 전문 외식업체들만 규제를 당하는 꼴이다.
이쯤 되면 국내 대형 유통사들은 분통이 터질만하다. 정부의 의지는 중소상권을 살리겠다는 것이지만, 덕분에 살찌우는 건 중소상인들이 아니라 외국계 경쟁기업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의 손발을 묶는다는 일차원적인 정책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규제는 정부가 시장의 순기능을 돕기 위해 발휘하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너무 많은 규제를 고민 없이 남발한다. 그러다 보니 정책에 대한 공정성과 효율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중소상권의 위기는 대형마트와 대형외식업체들의 영향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경쟁력 약화로 인해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시스템을 채택한 상태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율경쟁이라는 '룰'은 인정해야 한다.
다만 균형성장과 복지라는 대의를 위해 국가가 나서서할 일은 이들의 자생력을 길러주고 대형사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명절날 마다 기관장들이 전통시장상품권을 사주고, 덩치 큰 유통사들만 때려잡는다고 서민상권이 살아 날 것이란 생각 자체가 지엽적이다. 규제가 대형사들의 발목을 잡으면 움츠러든 기업은 결국 비용을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한다. 직장인들의 지갑이 얇아지면 동네 식당을 찾는 손님들도 줄어드는 악순환의 수레바퀴가 돌게 된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모두가 희망과 활기를 원하고 있다. 정체되고 막힌 혈맥이 위와 아래에 쏠림 없이 골고루 돌기를 원하고 있다. 어느 한곳을 막아 다른 쪽으로 흐름을 늘리겠다는 단편적인 정책들로는 새 시대의 희망을 기대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편협적인 평등의식은 결국 모두에게 독(毒)이 될 뿐이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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