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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의 10 Voice] <주간 아이돌>, 죽어가는 아이돌도 살릴 하얀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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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의 10 Voice] <주간 아이돌>, 죽어가는 아이돌도 살릴 하얀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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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음 주에도 방송해요?” MBC 에브리원 <주간 아이돌> 첫 회가 끝난 후, 정형돈이 제작진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없이 두 MC만 덩그러니 서 있는 스튜디오, 말하는 대로 CG를 입혀주겠다는 제작진의 알 수 없는 자신감, 진행하는 사람조차 정체성을 파악할 수 없는 코너들. 제아무리 ‘정대세’ 정형돈이라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애초 계획했던 8회를 무사히 넘기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13회에 시청률 0.92% 달성, 41회에 첫 SM 아이돌 출연 및 시청률 1% 돌파, 그리고 1주년.

팀과 멤버를 동시에 살리는 묘수


[이가온의 10 Voice] <주간 아이돌>, 죽어가는 아이돌도 살릴 하얀 병원 <주간 아이돌>에 출연한 이상 구박은 필수, <세바퀴>의 무조건적인 온정을 기대해선 안된다.


시청률이 오르고 섭외력도 좋아졌지만 아이돌 그룹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만큼은 초심을 잃지 않았다. ‘금주의 아이돌’ 첫 게스트였던 인피니트에게 “이상하게 노래가 확 못 떠요”라며 정곡을 찌르고 “너무 외운 티가 난다”는 말로 열심히 신곡 소개를 하는 엠블랙을 무안하게 만들던 정형돈과 데프콘은 여전히 속마음을 감추지 않고, 칭찬에 인색하며, 두 팔 벌려 게스트의 실수를 반긴다. 걸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저 정도 급은 아니었는데 너무 예뻐졌다”는 대범한 외모 평가는 기본, 개인기가 조금이라도 어설프다 싶으면 가차 없이 “내가 남자 아이돌이었으면 한소리 했다”거나 “집에 가라”고 호통을 친다.

<주간 아이돌>에 출연한 이상 구박은 필수, 정형돈과의 면담은 옵션이다. 물론 MBC <세상을 바꾸는 퀴즈>(이하 <세바퀴>)에 출연하면 쉽고 편하게 홍보할 수 있다. 신곡 몇 소절만 불러도 칭찬과 박수가 돌아오고, 애교까지 보여주면 대번 귀여운 막내 대접을 받는다. 운이 좋으면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를 수 있지만, 똑같은 소개멘트와 리액션으로 포장된 <세바퀴>에서 오래 기억되는 아이돌 그룹은 없다. 하지만 정형돈과 데프콘은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 유일무이한 게스트 조각상을 만들어낸다. ‘랜덤플레이 댄스’ 코너에서는 신인 아이돌 그룹 특유의 빤한 껍데기를 벗기고 ‘다시 쓰는 프로필’ 코너로 넘어와서는 덩어리를 해체해 각 멤버들에게 고유의 색깔을 입히기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 소속사는 <주간 아이돌>을 주목하세요


[이가온의 10 Voice] <주간 아이돌>, 죽어가는 아이돌도 살릴 하얀 병원


그래서 조각도를 쥐고 있는 정형돈을 빼놓고 <주간 아이돌>의 지난 1년을 논하기란 불가능하다. 삼촌 팬의 사심을 여지없이 드러내다가도 어느 순간 소속사 사장님보다 더 가혹한 모습을 보이는 정형돈은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 MC들의 장점을 집약시켜놓은 듯하다. 집요한 질문공세를 통해 일단 남녀 아이돌 멤버들을 엮고 보는 능글맞음은 김구라를, 사소한 실수를 꼬투리삼아 깐족대고 잊을만하면 또 꺼내는 무한반복형 공격성은 윤종신을, 데프콘의 아슬아슬한 발언을 적정선에서 자제시키고 소외된 멤버들을 토크의 정중앙으로 유인하는 진행 스타일은 김국진을 닮았다. 따라서 정형돈과의 개인 면담은 원샷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며, 정형돈이 ‘구멍’이라고 지적할수록 그 멤버의 방송분량은 늘어난다. 애정을 전제로 한 공격이 차곡차곡 쌓이면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캐릭터가 완성된다. “8주짜리 아이템이 1년을 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전적으로 내 힘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는 정형돈의 발언은 비록 모양 빠지는 자화자찬이긴 했지만 절대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정형돈이 없더라도 늘 평균 이상의 예능감을 보여주는 샤이니 같은 아이돌 그룹도 있고, 굳이 <주간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아이돌 그룹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많다. 그러나 중심을 잡아주는 외부인 없이 캐릭터를 만들고 서사를 이끌어내는 아이돌 그룹은 흔치 않으며, 가장 지루한 방법으로 존재를 알리는 <세바퀴>를 비롯해 아이돌 그룹을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창구 역시 드물다. 매주 등장하는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대중들에게 접근하지 못한 채 ‘덕후’라 불리는 마니아 시장에서 소비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덕후’의 마음으로 투입한 인풋을 바탕으로 대중의 취향에 맞춘 아웃풋을 생산해내는 <주간 아이돌>은 <세바퀴>의 재롱잔치와 Mnet <와이드 연예뉴스> ‘인피니트 서열왕’ 같은 자체생산 사이에 존재하는 가교와도 같다. 제작진이 팬들끼리 공유하고 있는 깨알 같은 정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정형돈이 그것을 스튜디오에서 예능의 코드로 소화시키는 <주간 아이돌>은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광경을 만들어낸다. <주간 아이돌>의 “하얀 병원” 같은 스튜디오란, 아직 아무것도 발굴되지 않은 아이돌에게서 무한한 매력을 끄집어내는 프로그램의 상징물이다. 1년이 지났지만 <주간 아이돌>은 여전히 백지 상태다. 어떤 아이돌 그룹이 출연해도, 혹은 똑같은 아이돌 그룹이 몇 번을 재방문해도 매번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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