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증권사도 공범
[아시아경제 정재우 기자] 단주 주문을 이용한 주가조작(5월2일자 ‘어느 주가조작범의 고백’ 참조)은 주식투자자라면 누구나, 그것도 단독으로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 우려를 더하고 있다. 실제로 증권전문 포털에 ‘투자기법’으로 소개되고, 주요 증권사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주가조작에 용이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일반투자자들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10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든 증권사가 주가가 급변한 종목을 투자정보로 제공하고 있었다. 5분 전이나 10분 전 혹은 1시간 전에 비해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르거나 주가가 가장 많이 떨어진 종목을 순서대로 나열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단주 주문 주가조작범들은 시세조종 대상 종목을 골랐다.
10개사 중 4개 증권사는 시세조종꾼들이 사용한 방식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도록 ‘매수’, ‘매도’ 단축키도 제공하고 있었다. 이들은 각각 F2, F3 혹은 F5, F8 등을 매수매도 주문을 낼 수 있는 단축키로 설정해 투자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이 4개사를 이용하는 투자자는 당장 지금이라도 단주 주문을 통한 주가조작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행위가 증권사들의 이익과도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자자에게 투자편의를 제공한다는 미명아래, 단주 주문을 편리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테마주 주가조작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결국 다 증권사의 수수료 수익과 연관이 있지 않겠냐”며 우회적으로 증권사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실제 ‘단주 주문 시세조종꾼’들은 모두 각 증권사의 VIP고객이다. 주가조작 수법상 5분 안팎의 시간 안에 수백회의 계약을 체결해 일반투자자를 유인하는 ‘미끼’로 사용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많이 지불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주가조작을 통해 벌어들인 돈의 절반 가량은 증권사에 수수료로 낸다. 정치인테마주 작전세력을 조사했던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단주 주문 주가조작 혐의자들은 4000만원가량을 챙기면 2000만원가량을 수수료로 써야한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시세조종 등의 위법행위는 모두 개인들이 저지르면서 증권사는 덩달아 수수료라는 범법행위의 열매를 나눠가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재주는 곰(주가조작범)이 넘고 돈은 주인(증권사)이 번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편 미래에셋, 삼성증권 등은 고객이 주문 실수로 손실을 볼 것을 우려해 매수·매도 주문에 대한 단축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모두 단축키로 한 번에 체결되지 않고 확인버튼을 한 번 더 누르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증권과 대우증권도 주문 타이밍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주문 단축키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주식에 대해서는 단축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정재우 기자 j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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