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이하 FTA) 체결은 한국 문화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미 한미FTA는 5년 전에 한국 영화에 거대한 낙인을 찍었다. 지난 2006년 한미FTA 선결 조건으로 미국은 한국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는 일 수 즉 스크린 쿼터(Screen Quota) 축소, 더 나아가 폐지를 한국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그 이듬해부터 스크린 쿼터는 1년 146일에서 73일로 정확히 '반토막' 났으며, 그 여파로 한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급감했다. 주로 소규모의 인디펜던트 영화나 영세한 제작사 영화들은 계속해서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두 번째 라운드다. 이번의 주요 타깃은 국내 방송 시장과 방송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영화ㆍ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다. 이번 한미FTA의 쟁점(爭點) 네 가지를 정리했다.
爭點 1, 방송 쿼터
이번 한미FTA의 핵심은 케이블과 위성 등 비(非) 지상파 유료방송의 애니메이션, 영화 부문에서 채널 별 국내 제작 프로그램 의무 편성 비율이 줄어드는 것이다. 영화는 25%에서 20%로, 애니메이션은 35%에서 30%로 각각 축소됐다. 추후 채널들은 국내 제작 영화를 연간 전체 시간의 20% 이상만 편성하면 된다.
한국 영화의 의무 편성 비율이 줄어드는 반면 케이블 위성방송의 1개국(외국) 제작물 편성비율 상한선은 60%에서 80%로 완화된다. 당연히 외국에서 수입한 영화ㆍ애니메이션ㆍ대중 음악 등 1개 국가 제작 콘텐츠의 편성 비율이 높아지면서 특정 국가의 프로그램이 채널을 독식할 우려가 커졌다. 특히 다양한 예능 콘텐츠를 확보한 미국 의존도가 심화돼 드라마ㆍ예능ㆍ교양ㆍ다큐멘터리 등 전 영역에서 고루 국내 제작사들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6년 1차 타격을 입은 영화 부문은 이번 한미FTA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방송에서 고정적으로 영화를 방영하는 프로그램이 사라진 지 오래이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영화 방영 자체를 잘 하지 않아 20%건 25%건 현실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케이블 영화 채널도 이미 개봉된 흥행 영화들의 재방송으로 이를 제어할 수 있어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총량제(總量制) 개념의 애니메이션은 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미 미국과 일본 등의 애니메이션에 지배되고 있는 판국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편성 비율이 5% 줄어들면 연간 70억 원 정도의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다. 줄어드는 돈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국내 영세한 애니메이션 업체들이 느끼는 불안감이다. 미국 대형 콘텐츠 업체들의 본격적 공세가 시작되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월트 디즈니ㆍ폭스채널ㆍHBOㆍSHOWTIME 등 미국의 유력 방송 사업자들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한미 FTA는 협정 발효시점부터 3년 유예기간을 거쳐 종합편성과 보도, 홈쇼핑 채널을 제외한 일반 채널에 대해 외국인 투자 지분의 한국 법인 설립 방식인 간접 투자를 100% 허용했다.
爭點 2, 온라인시장
온라인 시장 부분은 아직은 어떠한 규제 조항도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으로, 이번 한·미FTA 타결이 국내 영상 산업에 끼치는 직접적 영향은 없다. 불법 복제와 유통에 대한 시정 요구가 거세지고, 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직접적으로 ISD(Investor-State Dispute, 해외투자자가 상대국의 법령ㆍ 정책 등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 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오히려 한·미FTA가 온라인 시장에서의 불법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정리되면 불법 유통 이슈가 해외 콘텐츠 업체들이 한국에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였으므로 그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주로 미국 등 해외 콘텐츠들이 온라인을 통해 직접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센터 류형진 연구원은 "해외 콘텐츠 업체들은 훨씬 많은 콘텐츠 라인 업을 갖고 있으며, 온라인과 비디오 시장이 '하드 코어'한 내용의 하위 콘텐츠가 각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인 탓에 국내 콘텐츠 업체들의 경쟁력은 매우 열세에 놓일 수 있다" 고 전망했다. 국내 온라인 콘텐츠 업체들이 플랫폼 정비에 더해 다양한 콘텐츠 확보까지 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爭點 3, 제한상영가등급
등급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미국은 영화제작업체와 배급업자들이 설립한 단체인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가 자율적으로 영화의 등급을 지정하고, 미국영화협회가 매긴 등급이 영화 시장에서 소비자가 영화를 선택하는 중요한 정보로 기능한다. 그러나 한국은 문화관광부 산하단체인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이를 제도적 규율로 활용하고 있다.
추후 국내의 제한상영가등급(대한민국의 극장에서 개봉되는 모든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전체관람가,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18세 이상 관람가, 제한상영가 등 5개 중 하나의 상영등급을 받아야 상영이 가능하다. 이 중 제한상영가는 지정된 제한 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한데, 국내에는 제한상영관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실상 상영 불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을 해외 영화 업자들이 불공정한 규제로 인식해 시정 요구를 해올 수 있다. 이런 경우 국내 영화계는 과거 숙원이었던 완전 등급제 실현을 목격할 수 있지만, 동시에 해외의 무분별한 음란폭력물을 다스려야 하는 큰 짐이 떨어지게 된다.
爭點 4, 공적단체들의 지원사업
공적 단체들의 한국 영화 산업의 공적 지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공적인 지원을 불공정한 것으로 여기고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 제 12장 '국경간 서비스 무역'은 '정부지원융자, 보증 및 보험을 포함하여 당사국이 제공하는 보조금 또는 무상 교부와 당사국의 영역에서 정부권한행사로 공급되는 서비스에 적용되지 아니한다. 정부권한행사로 공급되는 서비스라 함은 상업적 기초에서 공급되지 아니하고, 하나 이상의 서비스공급자와의 경쟁 하에 공급되지 아니하는 서비스를 말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석이 애매모호하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국내 콘텐츠 부문에 지원을 담당하는 국내 공적 단체들은 이를 '예외'로 여기고 영향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후자의 경우라면 차후 정부에서 시행하는 모든 콘텐츠 지원 사업이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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